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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로 보는 이야기

주거의 평온을 침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by KatioO 2024.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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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례 2023도15164(24. 2. 15.) - 형법 제319조(주거침입, 퇴거불응)

A는 빌라에 살고 있는 전 여자친구 B가 집 안에서 나누는 대화 등을 녹음하기 위해, 또 현관 앞에 "게임은 시작되었다."는 문구를 적은 마스크, A가 가지고 있던 B의 사진을 걸어두기 위해 빌라 계단과 복도를 드나들었다. 해당 빌라는 현관에 도어락도 없으며, 경비원도 없고, CCTV도 작동하지 않아 사실상 외부인을 전혀 통제하지 않고 있다. B는 A가 계단, 복도를 올라온 것만으로도 주거침입이라 주장한다.

 

오랜만에 살펴보는 형법 판례이다. 내용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A는 전 여자친구인 B가 살고 있는 빌라의 계단, 복도까지만 들어가고 B의 실질적인 주거지로 들어가진 않았다. 형법 제319조에서는 사람의 주거 또는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한 자는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주거침입에 해당하는 죄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를 살면서 주거의 형태는 많이 발달, 변화하였고, 그에 따라 "주거"라는 것에 대한 개념도 시대에 따라 많이 변한다. 주거침입죄를 처음 죄로 규정한 1953년대의 주거와 지금의 주거는 개념만으로도 많이 다르다고 느낄 것이다. 

형법
제319조(주거침입, 퇴거불응)  ①사람의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에 따라 주거침입의 판례도 변화해왔다. '침입'의 정의에 대해서도 당연히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우리가 이번 판례에서 다뤄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주거'의 개념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를 '주거'라고 하며, 이 주거침입죄로 어디까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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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 어디까지를 내 주거지라고 할 수 있는가?

과거 포스팅에서 살인죄마저도 그 사람에 대한 기준이 상황에 따라서는 굉장히 모호해질 수 있음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우리가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기준도 그러한데, '주거'의 개념은 얼마나 더 모호하겠는가. 하지만 형법은 이러한 애매함을 용납하지 않고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라면 인정할 만한 적당한 기준이 필요하다. 그 단어의 해석의 차이로 헌법상 권리인 인간의 자유를 억압, 구속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거'라는 것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 조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의 주거는 본채에 마당이 있고 담으로 그 경계를 세워서 사는 형태를 취했다. 그리고 손님이 있으면 본채가 아닌 별채를 따로 두어 사랑방이라는 이름으로 손님을 묵고 가게끔 하였다. 즉, 담이 세워진 마당이라는 경계 안에 건물이 두 개가 있었다. 내가 만약 사랑방에 장기간 머무는 식객이라고 가정해보자. 내 주거는 어디까지인가? 마당 전체가 나의 주거인가? 집의 주인은 본채에 들어서 있는 사람이고 나는 그저 식객일 뿐인데, 마당 전체가 내 주거라고 하기엔 집주인 입장에선 억울하지 않겠는가? 별채에 사랑방이 2개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별채의 대청마루까지가 내 주거지인가? 이것 또한 마냥 그렇다고 하기가 어렵다. 예전 우리 조상들은 화장실이 방마다 있지 않았기 때문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선 공용공간인 대청마루를 지나야 한다. 대청마루가 내 주거지라 한다면, 다른 사랑방에 있는 손님은 화장실을 갈 때마다 내 주거지를 침범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사랑방을 들어가기 위한 창호문까지를 내 주거지라고 하자. 이제 모든 사람은 대청마루에 앉아 사랑방에서 들리는 나의 사적인 대화를 듣더라도 그들을 비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그저 공용공간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사랑방에 앉은 나는 밖에 나의 대화가 들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머무는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에서의 주거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甲아파트 1동 1904호에 거주하고 있다. 밖에서 내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甲아파트 전체를 아우르는 정문을 통과하여야 하여야 한다. 그 뒤 1동 건물 내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 위해 1동 1층에 위치한 정문을 또 통과하여야 한다. 이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 위해 엘리베이터 문을 통과하여 19층으로 이동한다. 이후 1904호에 들어가기 위해 1904호의 정문을 다시 통과하여야 한다. 무의식 중에 이동해 왔지만 아파트의 완전한 밖에서 우리 집까지 이동하는데 최소 4개의 문을 통과하고 있다. ①아파트 출입구 ②1동 입구 ③엘리베이터 문 ④1904호 정문 중 어디까지가 나의 주거지인가? 개인별로 생각하는 주거지의 한계는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 적었듯이 형법에서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인정할 만한 적당한 기준"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어디까지를 주거지라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을 바꾸어 어디까지를 주거지라 결정해야 보통의 사람들이 만족할까요?라 하면, 이에 대한 답을 내기는 쉽지가 않을 것이다. 

주거침입죄를 통해서 형법이 우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주거의 평온"이다.

이젠 본채 주인 입장에서 다른 사례로 가정해보자. 뒷산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우리집의 정문으로 들어와 후문으로 나가는 길만이 존재한다. 덕망있던 나의 아버지는 무려 50년간 마을 사람들을 위해 우리집 마당에 딱히 문을 세우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 언제라도 뒷산에 올라가기 위해 마당을 지나갈 수 있도록 하였다. 담도 세워져 있어 경계는 확실한데도 불구하고 이 마당을 주거로 볼 수가 있는가? 24시간 아무때나 이 마당의 주인인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을에 사는 모든 주민들은 나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이 마당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나들 수 있다. 주거가 어디인지는 너무나도 명확한데 침입인지의 여부가 이제는 모호해졌다.
 
주거침입과 관련하여 아주 유명한 판례가 하나 있다. 2017도18272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판결한 판례인데, 이를 한번 살펴보자. 해당 사건은 피고인들이 甲업주가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기자 乙을 만나 식사를 하면서, 乙이 부적절한 요구를 할 경우, 이를 촬영할 목적으로 녹음, 녹화 장비를 설치, 해체하는 과정에서 甲 음식점의 방실에 들어감으로써 주거를 침입하였다는 내용이다. 

판례 2017도18272(22. 3. 24.) 전원합의체 판결
주거침입죄는 사실상 주거의 평온을 보호법익으로 한다. …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태양으로 주거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대체로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겠지만, 단순히 주거에 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거주자의 의사에 반한다는 주관적 사정만으로는 바로 침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는지는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태양인지를 평가할 때 고려할 요소 중 하나이지만 주된 평가 요소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침입행위에 해당하는지는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는지가 아니라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태양인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행위자가 거주자의 승낙을 받아 주거에 들어갔으나 범죄 등을 목적으로 한 출입임을 알았더라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 주거침입죄의 '침입'행위에 해당하려면, 출입하려는 주거 등의 형태와 용도·성질, 외부인에 대한 출입의 통제·관리 방식과 상태, 행위자의 출입 경위와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행위자의 출입 당시 객관적·외형적으로 드러난 행위태양에 비추어 주거의 사실상 평온상태가 침해되었다고 평가되어야 한다. 이때 거주자의 의사도 고려되지만 주거 등의 형태와 용도·성질, 외부인에 대한 출입의 통제·관리 방식과 상태 등 출입 당시 상황에 따라 그 정도는 달리 평가될 수 있다.

 

乙의 의사와 관계없이 함부로 이를 녹음, 녹화한 것이 어떤 죄를 이루는 것과는 별개로 이를 위해 방실을 침입한 것은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에서 영업주의 승낙을 받아 들어간 것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주거침입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이러한 불법적인 행위를 할 것을 업주가 알았더라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평온상태를 해치는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음식점'이기에, 누구나 출입할 수 있으며, 보통 녹음기를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음식점 출입을 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침입이 되기 위해선 누구나 들어올 수 있어서는 안되고 그 출입의 통제, 관리 방식도 중요하다는 의미가 된다. 이 음식점이 애초에 VIP를 상대로 장사를 하는 곳이라, 손님들에게 전자기기를 가지고 출입할 수 없다고 애초에 차단하는 공간으로 영업을 해 오고, 실제로 입구에서 금속탐지기로 이를 검사하고 있었음에도 녹음, 녹화장비를 가지고 들어가 방실을 침입하였다면, 당연히 같은 상황이어도 주거침입죄가 인정됐을 것이다. 이것이 이번 사건이 가지고 있는 논점이다.
 

모두가 사용하는 공용구간은 주거인데, 출입통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다가구용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택·연립주택·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 내부의 엘리베이터, 공용 계단, 복도 등 공용 부분도 그 거주자들의 사실상 주거의 평온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으므로 주거침입죄의 객체인 ‘사람의 주거’에 해당한다(대법원 2009. 9. 10. 선고 2009도4335 판결 등 참조)

 
우선 과거 판례는 엘리베이터, 공용계단, 복도 등은 공용으로 사용하는 부분이다 하더라도 결국 내 주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므로, 이곳 역시 주거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 즉, 이번 사례에 해당하는 공용계단, 복도는 '주거'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 빌라는 건물 현관에 도어락도 없었고, CCTV도 사실상 무용지물이었으며, 경비원도 없어 사실상 외부인을 통제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 판례를 한번 살펴보자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공동현관에 출입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주거로 사용하는 각 세대의 전용 부분에 필수적으로 부속하는 부분으로 거주자와 관리자에게만 부여된 비밀번호를 출입문에 입력하여야만 출입할 수 있거나,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관리하기 위한 취지의 표시나 경비원이 존재하는 등 외형적으로 외부인의 무단출입을 통제·관리하고 있는 사정이 존재하고, 외부인이 이를 인식하고서도 그 출입에 관한 거주자나 관리자의 승낙이 없음은 물론, 거주자와의 관계 기타 출입의 필요 등에 비추어 보더라도 정당한 이유 없이 비밀번호를 임의로 입력하거나 조작하는 등의 방법으로 거주자나 관리자 모르게 공동현관에 출입한 경우와 같이, 그 출입 목적 및 경위, 출입의 태양과 출입한 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공동주택 거주자의 사실상 주거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태양으로 볼 수 있는 경우라면 공동주택 거주자들에 대한 주거침입에 해당할 것이다.(대법원 판례 2021도15507)

 

비교적 최신 판례이며, 이 판례에서는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조작하는 등의 방법으로 '사실상' 주거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경우여야 주거침입에 해당한다며 상당히 좁은 해석을 했다. 실제 본 사건의 원심인 고등법원은 A가 마스크나 사진을 걸어두려고는 했지만 실제로 걸지 않았고, 현관문은 항상 열려 있어 그냥 들어가기만 했으며 피해자가 살고 있는 집의 문을 열려는 시도 등을 하지는 않아 B는 A가 빌라에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알지 못했다. 2021도15507 판례에 따르면, 사실상 침입한 행위로 볼 수 없다 판단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고등법원은 이를 무죄로 선고하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에 다음과 같이 이를 부정하였다.

빌라 건물은 … 피고인이 들어간 공용구간은 형태와 용도·성질에 비추어 거주자들의 확장된 주거공간으로서의 성격이 강하여 외부인의 출입이 일반적으로 허용된다고 보기 어려운 점, … 주차장 천장에 CCTV가 2대 이상 설치되어 있고 그 아래 기둥 벽면에 ‘CCTV 작동 중’, ‘외부차량 주차금지’라는 문구가 기재된 점, 피고인의 출입 당시 CCTV가 실제로 작동하지는 않았고, 공동현관에 도어락 등 별도의 시정장치가 설치되지 않았으나, … 빌라 건물 일체에 대한 외부인의 무단출입을 통제·관리한다는 취지를 대외적으로 표시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 점 … 피고인은 甲 주거의 사실상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태양으로 빌라 건물에 출입하였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이유로, 이와 달리 보아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 주거침입죄의 ‘침입’에 관한 법리오해 및 심리미진의 잘못이 있다.

 

CCTV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도어락 등 별도의 시정장치가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판시하였으며, 일반적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허용한다고 보기도 어렵고, CCTV는 작동하지 않더라도 주변에 빌라 주인이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다는 취지의 푯말을 걸어둔 점 등으로 보아도 외부인의 출입을 사실상 막고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사실상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였다고 본 것이다. 즉, 도어락을 조작하는 등의 구체적인 행위가 없더라도 출입만으로도 충분히 주거침입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한 판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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