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례 2022두56661(24. 4. 4.) - 헌법 제11조 제1항(평등권)
A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이하 "재림교")는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 종교적 안식일로 여겨, 직장, 사업, 학교 활동 및 시험 응시 등 세속적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B국립대학교 법전원 신입생 모집을 위한 1차 평가에 합격한 A는 2차 면접을 앞두고 있다. B대학은 면접을 토요일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 실시하면서 1차 합격자들을 무작위로 배치하면서 A가 오전반으로 배치되자 종교적 안식일을 이유로 오후반으로의 변경을 요청하였는데, B대학은 공정을 이유로 이를 거절하였다. |
우리나라는 종교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도록 헌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이며, 중동과 같은 나라들과는 달리 특별한 국교가 없는 나라이다. 특별히 어떤 종교를 국교화하지 않았다는 말은 반대로 얘기하면, 임의의 종교에 대해서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수학적 논리에서 "임의의"는 결국 "모두"를 의미한다.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주류의 종교가 아니더라도, 어떤 종교라도 그 종교적 신념에 따른 행동에 대한 평가는 모두에게 평등해야 하며, 이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된다. 설령 그 행위가 다수의 사회적 통념에 반하는 행위일지라도 말이다. 이번 판례는 그런 종교적 신념에 따른 평등권을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유와 평등, 그 애매한 관계
과거 인류는 자유라는 개념이 없었던 적이 있다.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 우리는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이 없이 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복권마냥 하늘의 변덕에 이를 기대는 수 밖에 없었다. 복권은 그래도 "에이 안됐네."라며 한번 웃으며 넘길 수나 있지만, 1년에 한번 수확하는 농사는 그렇지 못하다. 하늘이 한번 노하여 수해를 입거나, 가뭄이 찾아오면 그 한번으로 1년의 시간을 버리게 된다. 그마저도 현대에서는 그저 농경사업의 실패로 치부할 수 있을지언정, 당시의 이들에게는 1년을 먹을 식량이 사라진 것이다. 즉,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관개사업도 없던 시절, 논에 물을 대기 위해서는 하늘이 내려주는 물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농부의 입장에서는 하늘에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내가 기도를 한다고 들어줄리가 만무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A라는 사람이 하늘에 기도하고 제를 올리면 높은 확률로 비가 온다. 농부는 A가 꼭 하늘에서 내려준 신의 대리인처럼 느껴진다. 당시의 A에게는 단순히 비를 내려 농경사업을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다. 이러한 신의 대리인으로써의 A에 대한 믿음은 초기 종교의 모습으로 발달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이란 늘 그렇듯, 자신의 것을 보호하려는 습성을 가진다. A는 신의 대리인은 아니기에, 언젠간 비를 부르지 못하게 될 것이고, 그렇더라도 나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나의 탄탄한 지지층을 만들어 둘 필요가 생긴다. 아니 A가 정녕 신의 대리인이라 할지라도 이를 이용해 자신의 것을 쉽게 보호하고자 하는 기득권층은 다른 사람들이 내 것을 함부로 넘보지 못하도록 하고 싶다. 이렇게 정치는 발생하고 자유는 억압되고 계급은 발생한다. 하지만 고대사회의 인류는 이에 순응하여야 한다. 저들이 우리의 목숨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하늘이 행하였다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일들이 이유를 갖게 되었고, 이는 곧 신의 의지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게 된다. 이에 사람들은 신의 대리자라 생각했던 A나 본인이나 큰 차이가 없다고 느끼게 되고, 모든 사람은 태어남으로써 같은 권리를 갖는다는 "천부인권" 사상이 설파된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것이며, 그로써 지금까지 얽매였던 계급에서 벗어나 "자유"를 달라는 혁명의 움직임이 일어난다. 자유와 평등은 이렇게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사람의 목숨을 바쳐서 얻은 "자유"는 "평등"과 반대의 입장을 주장하게 된다.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로 들어오면서, 누군가는 많이 갖고 누군가는 적게 갖는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이는 "자유"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평등"의 입장에선 너무나 공정하지 못하다. 결국 국가는 누구나 "평등"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는 가진 자의 "자유"를 뺏어야 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살게 하기 위해서는 "평등"에 등돌려야 하는 배반의 관계가 성립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평등"이 필요했지만,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평등"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평등과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나 그 우선순위는 존재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제37조
①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②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11조로 평등권을, 제37조로 자유권을 보장하고 있다. 한번 자세히 조문을 뜯어서 살펴보자. 자유권을 보장하는 제37조의 경우에는 아주 중대한 사유를 필요로 하지만 어찌됐든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음에도, 평등권을 보장하는 제11조의 경우에는 "누구든지 모든 영역에 대해 차별받지 않는다."라고 적혀있다.
사용인(흔히 "사장님")은 자신의 근로자들을 이왕이면 똑똑하고 말을 잘 통하는 사람으로 뽑을 자유가 있다. 이런 자유를 누리기 위해 사용인은 당연하게도 지원서에 학력을 자세하게 기재하도록 하였다. 면접으로는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없다 판단하였고 사람의 기준은 결국 학력이다는 자신만의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지원자를 모집한 사용인은 뜻밖의 권고를 받는다. 바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인 평등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이다. 사장은 자신의 자유권을 보장해달라 주장했지만, 인권위는 평등권이 우선되어야 하고, 공공의 복리를 위해서 차별하지 않을 권리인 평등권이 더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권과 평등권이 대립한 지금의 상황,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하는가? 근로기준법(법률)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6조(균등한 처우)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性)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ㆍ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
종교적 신념으로 인해 차별받아서는 안된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을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이제 본 사례를 다시 살펴보자.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제1항은 "누구든지 종교,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A의 주장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의해 토요일 오전까지는 면접 등 세속적 행위를 할 수 없으니, 이를 오후로 미루어 달라."는 어찌보면 "재림교"가 아닌 사람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요구를 하였다. B대학교 총장은 "면접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무작위로 면접이 진행될 것도 미리 고지하였고, 순번을 임의적으로 뒤로 미루면 그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없다."는 이유로 위법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법원은 아래와 같이 판시하였다.
지필시험의 경우 문제의 유출을 방지(타인의 평등권 침해 방지)하기 위해 모든 응시자들이 동시에 시험에 응시하여야 할 공익적 요청이 높으므로 특정 응시자에 대하여만 시험일정을 변경하기 어렵고, 특정 응시자의 종교적 신념을 보장하기 위해 다른 모든 응시자의 시험일정을 일괄적으로 변경할 경우 그로 인해 소요되는 비용과 혼란이 크다. 그러나 피고가 ○○대 법전원 입학생 선발을 위해 실시하는 면접평가의 경우 개별면접 방식으로 진행되므로, 원고 개인의 면접시간만을 토요일 일몰 후로 손쉽게 변경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다른 응시자들의 면접시간을 변경할 필요도 없다(타인의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 면접평가 응시자들은 각 반의 면접이 시작되기 전에 모두 소지품을 제출하고 대기실에 입실한 뒤 격리된 상태로 자신의 면접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고가 일몰 후에 면접을 실시할 수 있도록 늦은 순번으로 면접순번이 지정된다고 하더라도 원고가 다른 응시자들에 비해 면접평가 준비 시간을 더 많이 받는 등의 부당한 이익을 받는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처럼 피고가 종교적 신념에 따라 원고가 입는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해 면접시간을 변경한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제한되는 공익이나 제3자의 이익은 원고가 받는 불이익에 비해 현저히 적다고 평가할 수 있다.
면접시간을 변경하더라도 개인만 변경하면 되고, 다른 사람들의 면접시간이 모두 조정되는 등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여지도 적으며, 개별면접이기에 지필시험과 달리 모두가 동시에 응시하여야 할 이유도 없고, 소지품을 모두 제출한 상태에서 순서를 기다리기 때문에, 평가 준비 시간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이 받아 부당한 이익을 받는다고도 보기 어렵기에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을 평등권을 주장한 A에 대해서는 이를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만큼, B대학은 A의 요구를 들어주었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평등은 형식적 의미의 평등이 아니라 실질적 의미의 평등을 의미한다. 한편 비례의 원칙은 법치국가 원리에서 당연히 파생되는 헌법상의 기본원리로서, 모든 국가작용에 적용된다(대법원 2019. 9. 9. 선고 2018두48298 판결).
위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볼 때, ○○대 법전원 입시 과정에서 재림교 신자들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결과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경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가 공익이나 제3자의 이익을 다소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그 제한의 정도가 재림교 신자들이 받는 불이익에 비해 현저히 적다고 인정된다면, 헌법이 보장하는 실질적 평등을 실현할 의무와 책무를 부담하는 피고로서는 재림교 신자들의 신청에 따라 그들이 받는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
여담으로 위 시험은 원심판결이 2021년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미 법전원 시험에서 최종 불합격 판정을 받고 3년이 지난 뒤에서야 대법원 판결을 받아낸 사례이다. 이미 3년이 지난 지금 A는 자신이 이겼더라도 이는 평등권을 해소할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의미지, 그 불합격을 취소하라는 것은 아니며, 이미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2021년 면접시험을 다시 치를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사실 실익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판시에 따라 A는 최종불합격자가 아닌 위법한 방법으로 면접의 기회만 박탈당한 사람이 되었으므로, 1차 시험 합격자라는 신분을 회복하여 면접만 다시 보면 되는 지원자로 돌아왔다는 데 그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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