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례 2023다283913(2024. 1. 15.) -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5조
A는 2008년 B보험회사로부터 실비보험을 들면서, 질병입원의료비 보장특약으로 '회사는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하여 피보험자가 부담하는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정한 요양급여 중 본인부담분 비용 전액을 보상하여 드립니다.'라고 정하고 있다. A는 이에 2021년 10월경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은 뒤 보험금 지급을 청구하였는데, B사는 해당 청구 금액 중 국민건강보험법 상 본인부담분을 초과하는 금액 110만원에 대해서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환급하기에, 보상대상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에 A는 B사를 상대로 보험금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
보험 관련 판결은 3심 대법원까지 가는 경우가 드물다. 특히나 소액 심판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 판결을 통해 보험사가 취할 이득은 고작 100만원이지만 3심까지 오면서 들어갈 소송비용은 이를 훨씬 웃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3심까지 왔다는 것은 이제 보험사측에서도 더 이상 본인부담분 초과분에 대한 애매한 해석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위 보험금 소송은 1심은 B, 2심은 A가 승소하였지만, 마지막 대법원에서는 보험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번에 보험사가 얻은 이득은 고작 100만원일지 몰라도 본인부담분 초과분에 대한 보험지급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소송이다 생각할 것이다. 이번 판례는 이러한 보험금 지급 관련 약관 해석에 대한 이야기이다.
실비보험? 본인부담분? 우선 단어부터 정리하자.
보험을 설계사를 통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들고자 할 때 제일 먼저 만나는 장애물이 바로 용어의 문제이다. 실손의료보험, 통칭 실비보험이라 불리는 위 보험(이하 실비보험)은 "질병 혹은 상해로 치료 시 보험가입자에게 발생한 실제 의료비 보상하는 보험"이라는 뜻이다. 위의 정의만 놓고 보면 너무 쉽게 느껴질 것이다. 내가 어디 아파서 병원을 갔는데 그 치료비가 10만원이 나와서 내가 10만원을 지급했다고 하면, 실비보험을 들었으니 실제 발생한 10만원을 보상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비 체계는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법」에 의거하여, 전국민이 건보료를 내고, 국가가 이 기금을 통해 의료비를 일부 지원하는 체계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오롯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유 단 하나로 국가가 운영하는 실비 보험 가입자이다.
의료비는 크게 급여, 비급여로 나뉜다.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해 국가가 보장해주는 의료비를 말하며, 그 외에 청구되는 의료비는 모두 비급여이다. 급여항목에 해당된다고 해도 전액을 국가가 부담하지는 않고, 급여 항목 역시 본인부담금과 공단부담금으로 나뉘며, 비급여는 모두 본인이 부담한다. 결국 위의 사례에서의 '급여 중 본인부담분 전액을 보장한다'는 것은 급여 항목의 본인부담금 + 비급여 항목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법
제44조(비용의 일부부담)
① 요양급여를 받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비용의 일부를 본인이 부담한다.
일부를 본인 부담하지만, 이것 역시 상한선을 두고 자신의 형편에 맞게 부담하게끔 하고 있다.
사람의 소득 수준에 따라 당연히 다르겠지만, 예를 들어 본인부담금이 급여의 절반으로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해보자. 단순한 치료차원에서 의료비가 한 30만원이 나와, 본인 부담금이 15만원이 나왔다고 하면 부담이 조금 덜할 테지만, 수술 자체가 고액이 들어 약 2억원이 청구됐다고 하면, 자신은 1억을 부담하여야 한다. 절반이라도 그 수술자체의 액수가 크면 클 수록 내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많아지게 되는 구조이다. 이러면 국가가 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취지에도 옳지 않은 결과를 발생시키기도 할 것이다. 이에 국민건강보험법 제44조에서는 부담액의 상한선을 두어 이 이상은 부담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44조(비용의 일부부담)
② 제1항에 따라 본인이 연간 부담하는 본인일부부담금의 총액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이하 이 조에서 “본인부담상한액”이라 한다)을 초과한 경우에는 공단이 그 초과 금액을 부담하여야 한다. 이 경우 공단은 당사자에게 그 초과 금액을 통보하고, 이를 지급하여야 한다.
공단이 초과분은 부담하게끔 되어있다. 그리고 아래 시행령에서는 그 초과분을 혹여나 본인이 부담하였다면, 이를 환급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규정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제19조(비용의 본인부담)
⑤ 법 제44조 제2항 후단에 따라 공단이 본인부담상한액을 넘는 금액을 지급하는 경우에는 요양급여를 받은 사람이 지정하는 예금계좌(「우체국예금ㆍ보험에 관한 법률」에 따른 체신관서 및 「은행법」에 따른 은행에서 개설된 예금계좌 등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는 예금계좌를 말한다)로 지급해야 한다.
위의 규정을 보면, 초과분에 대해서 의료비로 바로 청구하여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요양급여를 받은 사람에게 이를 주고, 그 사람이 병원비를 납부하게끔 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위 사례로 적용시켜보자면, 초과분 110만원을 공단이 병원에 직접 납부하지 않고 A에게 이를 주면, A가 이를 병원에 납부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뭐 중간과정을 거치는 것일 뿐이지 않냐 생각이 들겠지만, 결국 의료비 청구서에는 A가 납부한 금액으로 적힌다는 점이 이번 사례의 맹점이다. A는 결국 의료비 청구서에는 내가 지급한 것으로 나오니 이 부분까지 나에게 보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B 보험사는 이 부분은 공단이 사실상 납부한 것이니 보장내역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싸움의 핵심이다.
상식적으로는 당연히 공단이 부담하였으니 A가 실제로 납부한 금액은 아니므로 B 보험사의 이야기가 맞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법은 마냥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문제이다.
약관의 표현이 애매하면 고객에게 유리하게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5조(약관의 해석) ②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법은 참 이런 것까지 규정해놨냐 싶을 정도로 생각보다 세밀하게 구성은 되어있다.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그 약관을 애매하게 써놔서 다른 방식으로 해석이 된다고 하면,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A는 바로 이 점을 파고 들고 있다.
모든 보험상품은 표준약관이 크게 변할 때마다 세대를 다르게 표현하여 이를 구분한다. 보통 1세대, 2세대 이런 식이며 현재 실비보험은 4세대에 접어들고 있다.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올 때 크게 변화했던 부분 중 하나가 이 "본인부담상한액"에 대해서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확히 명시했다는 점이다. 문제는 위 사례에 해당하는 보험이 「국민건강보험시행령」에 위 본인부담상한액이라는 규정이 신설된 이후에 계약한 실비보험이라는 사실이다. 2심에서는 이를 근거로 하여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1) 약관의 내용은 개개 계약체결자의 의사나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함이 없이 평균적 고객의 이해가능성을 기준으로 하여 객관적·획일적으로 해석하여야 하고, 고객보호의 측면에서 약관 내용이 명백하지 못하거나 의심스러운 때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약관작성자에게 불리하게 제한해석하여야 한다.(2006다72093판결 참조)
2) … 피보험자가 지출한 의료비가 국민건강보험법상 본인부담금상한액을 초과하였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지출한 의료비 전액에 관하여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의미로 해석함이 타당하므로…
④ 본인부담금상한제는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 전인 2004. 6. 29. 국민건강보험시행령으로 신설되어 2004. 7. 1.부터 시행 중이었다. 따라서 피고는 2008. 11. 27.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 당시 보험계약에 본인부담금상한제 관련 내용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약관의 해석이 애매하여 이 초과분에 대해 본인부담금으로 볼 것이냐, 공단부담금으로 볼 것이냐?의 다툼은 전반적인 당시의 상황으로 보았을 때 계약 체결 당시 이 애매함을 해소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B 보험사가 이를 해소하지 않은 채 애매한 표현을 한 것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약관의 해석을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함이 맞으므로 본인부담금으로 보아 이를 보험금 지급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110만원 이니까 그냥 지급하자의 개념의 문제가 아닌 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2004. 7. 1.이후 1세대 표준약관에 의해 체결한 모든 실비보험에 대해서 B사 뿐 아니라 모든 보험사가 본인부담초과분에 대해서는 공단의 지급여부와 별개로 다 보장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B사는 기존 관례와 달리 대법원에 이를 판단해줄 것을 요청하게 된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아래와 같이 판시하고 있다.
약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해당 약관의 목적과 취지를 고려하여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해석하되, 개별 계약 당사자가 의도한 목적이나 의사를 참작하지 않고 평균적 고객의 이해가능성을 기준으로 객관적·획일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 위와 같은 해석을 거친 후에도 약관 조항이 객관적으로 다의적으로 해석되고 각각의 해석이 합리성이 있는 등 해당 약관의 뜻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야 한다. 반면 약관의 목적과 취지를 고려하여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그리고 평균적 고객의 이해가능성을 기준으로 객관적이고 획일적으로 해석한 결과 약관 조항이 일의적으로 해석된다면 약관 조항을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여지가 없다(2018다279217 판결 등 참조).
…
이 사건 특약에 관한 보험증권의 보상내역과 특별약관 문언의 내용과 의미, 본인부담금 상한제에 관한 국민건강보험법령의 규정 내용, 이 사건 특약이 담보하는 보험목적의 성질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특약에 관한 약관 내용은 피보험자가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른 요양급여 중 본인이 최종적으로 부담하는 부분을 담보한다고 봄이 타당하고, 본인부담상한액을 초과하여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환급받은 부분은 이 사건 특약의 보상대상이라고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이 사건 특약에 관한 약관 내용은 다의적으로 해석되지 않으므로, 약관의 뜻이 명확하지 않아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야 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약관조항이 여러 의미로 해석이 된다면, 이를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나,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평균적 고객들이 이해하는 기준으로 해석할 때, 그 해석이 일의적(一義的), 즉, 한가지 의미로만 해석한다면 유리하게 해석이고 자시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애초에 의미가 하나이므로
그렇다면 법원은 사례에서의 조항, '회사는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하여 피보험자가 부담하는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정한 요양급여 중 본인부담분 비용 전액을 보상하여 드립니다.' 이라는 조항에서 본인부담분은 위에서 설명했던 바와 같이 "공단에서 부담하는 본인부담상한액부분도 본인부담분인가"에 대한 해석이 다의적이지 않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미는 당연히 요양급여 중 본인이 최종적으로 부담하는 부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공단으로 환급받은 부분은 당연히 본인부담분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결정이다. 즉, 공단환급분에 대해서는 그 전후 사정(법 제정 이후 계약했다는 등의 사정)과 상관없이 당연히 형식과 절차를 불문하고, 최종적으로 본인이 부담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보장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내가 알기론 초과부담분에 대한 의견을 밝힌 최초의 대법원 판례인 것으로 알고 있어 보험업계에서도 꽤나 관심있게 보던 사건인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법의 논리는 명백해 보이지만 앞으로 보험금을 청구해야하는 고객의 입장에서는 꽤 골치가 아파지게 생기긴 했다. 앞서 말했듯이 초과분은 우선 우리가 돈을 낸 후에 공단으로부터 환급받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보험금을 청구하는 시점은 초과분이 발생하는, 의료비를 납부하는 시점에 발생하기 때문에, 사실상 보험사로부터 채권관계를 발생시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초과분에 대해서 먼저 지급한 뒤 보험사가 이를 환급하는 방식을 취해야 하므로, 사실상 보험사로부터 빌려온 것이 된다). 앞으로의 보험 지급과 관련해서는 추이를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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