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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로 보는 이야기

의사는 병원을 차리고 싶지만, 돈이 없다. 부자는 돈을 벌고 싶지만 자격이 없다.

by KatioO 2024.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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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례 2022도90(2023. 10. 26.) - 의료법 제33조(개설 등), 의료급여법 제10조(급여비용의 부담)

 

A는 의사인 B의 배우자이다. 2014. 1월 A는 B와 그 친인척들과 함께 병원을 세워 돈을 벌 목적으로 ○○재단을 설립하고 甲요양병원을 지었다. 이후 의사인 B를 내세워 그 책임 아래 실제로 의료행위를 할 의사들을 고용하고, A는 甲요양병원 간호팀장으로 근무, 그 외 이 병원 설립에 투자한 친인척들을 이사로 선임(차명으로)하여, 급여명목으로 월 500만원씩 지급하기로 한다. 이에 의료법인 및 병원 개설이 가능한 사람들로 구성하여 허가를 받고, 이를 2019. 9월까지 운영하였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직업군을 마주하게 된다. 대기업 회사원, 자영업자, 공무원, 전문직 등 세상에는 여러 직업이 존재하지만 그 직업이 법률에 의해 규정되는 건 그다지 많지 않다. 삼성에서의 근로방법, 자격, 채용방식 등을 국회가 법으로 제정하지 않듯이, 대부분의 직업은 당연히 그 회사의 내규에 따르고 사장 또는 그 회사에 돈을 댄 투자자(흔히 '이사'라고 부른다.)들의 판단에 의한다. 하지만 몇몇의 직업들은 그렇지 못하고, 국가가 이를 정해주는 경우가 있다. 검사, 의사, 공무원 등이 있으며, 이들은 국민의 안전과 생활에 밀접한 관계가 있어,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직업군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보건을 지켜야 할 의무 역시 헌법 제36조 제3항에 나와있다. 그에 따라 여러 의료정책을 세우고, 의료인들을 양성하여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보호하고자, '의료법'이라는 법률을 제정하여 이를 보호하고 있다. 오늘은 경북에서 있었던 의료법위반 판례를 하나 가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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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의사가 필요한 것인가, 기술자가 필요한 것인가? 

2018년 "블랙페앙"이라는 일본 드라마가 있었다. 주인공 토카이의 개인 이야기와 외에 의료기구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나에게는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토카이는 수술실력이 매우 뛰어나지만 직업윤리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고(개인사가 밝혀지기 전), 타카시나는 부족한 심장외과수술 실력을 '스나이프'라는 의료용 기계를 통해 극복하려는 인물이다.

 

드라마 중간, 타카시나는 토카이에게 수술을 위한 손기술만 좋은 사람은 '수술기술자'일 뿐 '의사'가 아니라는 식의 표현을 한다. 그냥 흘러가는 말이긴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세대에 빗대어 생각해 봄직한 한마디가 아닌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 어디든 의대는 최고 엘리트들이 가는 곳이다. 사람의 생명과 관계되어 있고, 알아야 할 내용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리가 좋다고 해서 수술실력이 좋다고는 할 수 없다. 단순히 많이 해봐서 잘하는 것과 태초에 손기술이 좋은 건 다른 이야기이다. 우리는 누구나 공을 가지고 놀 수 있다. 많이 다루어보고 배워서 누구든지 아마추어 축구선수, 야구선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중에 프로가 되는 건 아주 일부분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세계 최고가 되는 선수는 노력의 영역만은 아닐 것이다. 이렇듯 수술을 잘하는 것과 질병을 판단하는 것은 생각보다 그 괴리가 심한 영역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를 잘 합리적으로 버무리는 방법은 없을까? 판단은 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현재 '의사'라 불리는 사람들이 하고, 그에 대한 수술 등 기술은 '기술자'로 분업화하여 진행하면 의료서비스를 받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수술의 효율도 높이고 정확한 진단도 받고 일석이조가 아닌가?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법에서는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의료인과 의료행위란? 

의료법 제2조에서는 의료인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의료법
제2조(의료인) 
① 이 법에서 “의료인”이란 보건복지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사ㆍ치과의사ㆍ한의사ㆍ조산사 및 간호사를 말한다.

 

기본적으로 보건복지부장관이 허가한 "면허"를 가진 사람에 대해서만 인정한다. 즉,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은 국가가 이 수요의 공급을 결정한다. 그만큼 의료행위의 주체인 의료인이라는 것은 국가의 정책으로 엄격하게 관리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반대로 의료행위라 함은 포괄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의료법
제12조(의료기술 등에 대한 보호) 
의료인이 하는 의료ㆍ조산ㆍ간호 등 의료기술의 시행(이하 “의료행위”라 한다)에 대하여는 이 법이나 다른 법령에 따로 규정된 경우 외에는 누구든지 간섭하지 못한다.

 

의료행위에 대해서 명확히 하고 있는 규정은 없으며, 위와 같이 '의료인의 의료기술의 시행'이라는 한 문장으로 더 이상 정의하지 않고 있다. 사실 이렇게 정의하는 것이 더 올바른 방법이긴 하다. 의료행위를 오히려 명확히 규정해버리면, 의료인이 아닌 자가 규정된 의료행위 외에 의료행위료 여겨지는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이를 처벌할 구실이 없어지게 된다. 법이 모든 것을 막을 수 없고 최소한의 방어막으로써만 기능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실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오히려 의료인이 아닌 자들의 의료행위를 용납하는 꼴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이렇기에 의료행위에 대한 판단은 판례를 통해 그 한계를 암묵적으로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기계야 고장이 나면 고치면 되는 것이고, 그마저도 고쳐지지 않으면 그냥 버리면 된다. 즉, 그 버림으로 인해 재산상의 손해는 감수할지라도 생명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고장이 나면 고쳐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장애인이 되거나 사망에 이르고 이것은 인간의 존엄과도 관계되는 일이다. 고쳐지지 않는다고 기계와 같이 버리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그 버림으로 인해 재산상의 손해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과 관계된다. 휴대폰이 고장이 나면 개인이 유튜브를 참고하며 수리를 해 볼 수는 있다. 그러다 안되더라도 새로운 휴대폰을 구매하면 되니까. 하지만 사람이 고장이 나면 개인이 유튜브를 참고하며 수술을 해 볼 수는 없다. 그러다 안되더라도 새로운 사람을 구매할 수는 없으니까.

의료법
제27조(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 
①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의료행위라 함은 수술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웬만한 사람들은 정확히 구별해낼 것이다. 하지만 행정적인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병원을 설립하고 의사들을 모아 개원하여 사람을 모으는 행위는 의료행위인가? 아니면 단순한 사업개시인가? 이것이 의료행위라고 한다면 그럼 그 병원 안에서의 급여, 수납, 안내 등은 의료행위인가? 아니면 단순한 행정업무인가? 병원 카운터에 앉아 수납을 받는 의료행위를 위해서는 의료인 자격이 필요하므로, 카운터에 앉기 위해서는 의대를 졸업해야 하는가? 

 

 

의료인도 결국 돈이 문제다. 사무장 병원의 등장

개원이 의료행위일 때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돈'이다. 우선 국민이 국가로부터 보건행정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병원이라는 것이 필요한데, 병원을 개원하려면, 땅도 있어야 하고 건물도 지어야 한다. 그리고 의사도 사람인지라 무보수로는 일할 수 없는 노릇이라, 그것도 목이 좋은 자리에서 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개원도 '돈'이 필요하고 '돈'이 되는 자리에만 병원이 생기게 될 것이다. 공급이 아무리 많아도 시골, 인적이 드문 곳에는 같은 이유로 죽었다 깨어나도 병원이 지어질 수가 없다. 반대로 돈을 가지고 있지만 의료인 자격이 없어 병원을 짓지 못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이 둘의 이해관계가 만나 "사무장 병원"이라는 불법적인 병원이 탄생하게 된다.

의료법
제33조(개설 등) 
①의료인은 이 법에 따른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아니하고는 의료업을 할 수 없으며 …

제4조(의료인과 의료기관의 장의 의무) 
② 의료인은 다른 의료인 또는 의료법인 등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운영할 수 없다.

 

의료법 제4조, 제33조에 따르면, 의료인은 의료기관을 개설하고 의료업을 해야하며, 다른 의료인 또는 의료법인의 명의로 개설하거나 운영할 수 없고, 본인이 직접 병원을 개설하여 운영하여야 한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돈이 있어야 병원도 개설하는 법. 그렇기에 위 사례 역시 친인척들의 돈을 모아 의료인인 B의 자격을 빌려 A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요양병원을 개설하여 운영한 뒤, 그 수익금을 챙긴 사례이다. 하지만 돈이 없는 의사가 돈이 있는 사람을 이용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들이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데 더 쉽게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왜 이를 의료법으로까지 정해서 이렇게 막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선 과거 2004도7245판결을 살펴보자.

구 의료법이 의료기관 개설자격을 의료전문성을 가진 의료인이나 공적인 성격을 가진 단체로 엄격히 제한하고 그 이외의 자가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취지는, 의료의 적정을 기하고 건전한 의료질서를 확립하여 국민의 건강을 보호 증진하고, 영리 목적으로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경우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국민 건강상의 위험을 미리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대법원 2005. 2. 25. 선고 2004도7245 판결 등 참조).

 

의료인들에게 봉사와 희생만을 강요하여 의료질서 확립 및 국민의 건강을 보호, 증진하라는 뜻은 아니지만, 영리 목적으로 병원을 운영할 경우 그에 수반되는 여러 부작용들, 환자를 가려받는다든지, 돈이 되는 수술만 안내한다든지 등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되기에, 이를 엄격히 제한하고자 하는데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전히 돈이 걸린다. 돈이 없으면 병원을 짓지 못하는 것은 여전하다. 그에 대해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있다.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의 개설·운영 등에 필요한 자금 전부 또는 대부분을 의료법인에 출연하거나 의료법인 임원의 지위에서 의료기관의 개설·운영에 주도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의료법인의 본질적 특성에 기초한 것으로서 의료법인의 의료기관 개설·운영을 허용한 의료법에 근거하여 비의료인에게 허용된 행위이다. 따라서 비의료인의 주도적 자금 출연 내지 주도적 관여 사정만을 근거로 비의료인이 실질적으로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였다고 판단할 경우, 허용되는 행위와 허용되지 않는 행위의 구별이 불명확해져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할 수 있다.
의료법인 명의로 개설된 의료기관을 실질적으로 비의료인이 개설·운영하였다고 판단하려면,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의 개설·운영에 주도적으로 관여하였다는 점을 기본으로 하여, 비의료인이 외형상 형태만을 갖추고 있는 의료법인을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하여 적법한 의료기관 개설·운영으로 가장하였다는 사정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정은 비의료인이 실질적으로 재산출연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체가 인정되지 아니하는 의료법인을 의료기관 개설·운영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한 경우, 의료법인의 재산을 부당하게 유출하여 의료법인의 공공성, 비영리성을 일탈한 경우에 해당되면 인정될 수 있다. (2017도1807)

 

즉, 비의료인이 자본을 투자하여 병원의 설립에 기여하고, 그 운영에만 주도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다. 다만, 그 실질적인 운영은 의료인이 해야 하고, 비의료인이 외형상 의료인이 개설, 운영하는 것처럼 보이게만 하고 실질적으로는 비의료인이 이를 탈법적 수단으로 이용해 의료급여를 지급받는 등의 수익을 챙기면, 이는 비의료인이 의료행위를 한 것으로 보아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비의료인이 병원인 것처럼 하여 보험료(의료급여)를 지급 받으면, 이는 사기이다.

형법상 사기죄는 상대를 기망하여, 재산을 교부받거나 재산상의 이득을 취한 죄를 말하는 것이다.

형법
제347조(사기) 
①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의료법에 의해 개설된 의료기관이 아니라면 의료급여를 받을 수 없다.

의료급여법
제9조(의료급여기관)
① 의료급여는 다음 각 호의 의료급여기관에서 실시한다. 이 경우 보건복지부장관은 공익상 또는 국가시책상 의료급여기관으로 적합하지 아니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의료급여기관에서 제외할 수 있다. 

1.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

 

위 사례의 경우 甲요양병원은 적법하게 지어진 병원이 아니므로 당연히 의료급여를 받아서는 안되므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甲요양병원에 의료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 그런데, A는 적극적으로 이를 속여 자신이 설립한 요양병원이 적법하다며 보험공단을 속이고 의료급여를 지급해 줄 것을 요청하여, 요양급여비와 의료급여비 합계 총 200억원을 지급받았다. 이에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의료급여비용 지급으로 인한 법률적 효과는 추정급여비용을 예탁한 시·도지사나 의료급여비용 지급 업무를 위탁한 시장·군수·구청장이 아닌 자신의 명의로 의료급여비용 지급 업무를 수행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귀속된다. 따라서 추정급여비용을 보관·관리하면서 자신의 명의로 의료급여비용을 지급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의료급여비용 편취 범행의 피해자라고 보아야 한다. 의료급여비용이 시·도에 설치된 의료급여기금을 재원으로 지급된다거나, 의료급여비용 편취 범행으로 인한 재산상 손해가 최종적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귀속되지 않는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

 

예탁금을 지자체로부터 받아 공단이 이를 지급하므로 실제 재산상의 손해는 보험공단이 아니라는 이런 취지들도 사기죄의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데 있어서는 중요한 쟁점이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니니 우선 넘어가기로 한다. 결국 공단이든 지자체이든 불법의료기관이 보험공단으로부터 급여비용을 편취하는 것은 사기에 해당된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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