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3다244895 판례(2023. 11. 2.) - 민법 제390조(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 제615조(차주의 원상회복의무와 철거권)
모텔 사장 A는 보험회사 B를 통해 화재보험을 들었다. 어느 날 모텔에 투숙하던 C의 방에서 불상의 이유로 화재가 났고, 이에 B는 A에게 화재보험금 5,800만원을 지급하였다. 하지만 보험회사 B는 손님 C와 모텔사장 A 간의 숙박을 '단기 임대차 계약'으로 보고 C가 빌려간 물건이니 원상복구해야 할 책임이 있다며 A에게 지급한 보험금 일체를 C가 부담해야 한다 주장하고 있다. C는 투숙객일 뿐인데 화재에 대한 책임도 내가 져야 하는지 억울하다. 내가 낸 화재도 아닌데 말이다. |
논점이 애매할 수 있어 다시 한번 자세하게 설명하고 살펴보도록 한다. 보험회사 B는 C에게 '네 방에서 난 화재니, 네 잘못이 있어. 화재에 대한 책임을 져!' 가 아니라 '빌려간 물건이 쓸 수 없게 되었으니, 빌려간 네가 고쳐놔야지? 어떻게 고장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이다. 이 사건 관계자 A, B, C 모두는 이번 화재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논점은 화재의 원인을 규명하여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형법적 사안이 아니라, 임대차 계약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라는 민법적 사안이다. 앞에서 살펴 본 모든 사례들이 상식 안에서 이해되지 않고 '뭐 저런 것을 가지고 소송을 걸지?'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의 상식선에서 도저히 말도 안되는 걸 소송을 걸면 애초에 기각되어 잘 올라오지도 않는다. 우선 대법원까지 올라왔단 소리는 패소했을지언정 그 패소자의 주장이 도저히 말이 안되는 수준은 아니라는 걸 반증하기도 한다. 상대적 강자인 보험회사 B의 주장이 그렇게 터무니 없지만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자.
우리가 숙박업을 이용하는 것은 단 하루라도 결국 임대차 계약이다.
우리가 여행을 위해 하루 10만원을 지급하고 숙박을 하는 건 단순한 서비스업 및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판례에서는 이를 임대차계약으로 보고있다.
공중접객업인 숙박업을 경영하는 자가 투숙객과 체결하는 숙박계약은 숙박업자가 고객에게 숙박을 할 수 있는 객실을 제공하여 고객으로 하여금 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고객으로부터 그 대가를 받는 일종의 일시 사용을 위한 임대차계약으로서 …(2000다38718)
상품을 파는 것과 임대차 계약인 것은 그 관리 주체가 어디에 있는지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우리가 컴퓨터를 구매한다고 하면 컴퓨터를 관리·보수할 의무는 판매시점에서 판매자가 아닌 구매자에게 그 책임이 넘어간다. 구매하고 돌아선 순간 구매자가 떨어뜨려서 생긴 흠에 대해서는 오롯이 구매자인 본인의 책임이다. 다만, 내 과실이 아닌 보장기간 내 부품 고장이라면 이를 제조사에서 품질관리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 역시 제조사의 소비자 보호 방침일 뿐이지 법적인 의무에 의한 보장은 아니다. 하지만 월세를 산다고 가정하면 집주인과 임차인의 관계는 컴퓨터의 구매보다는 좀 더 복잡해진다. 계약 시점부터 임차인이 살고 있지만 결국 돌려줘야 할 물건이고 어찌됐든 집주인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 값의 영향을 미치는 수리(보통은 수선비)는 결국 그 효과를 집주인이 보게 되므로, 집주인이 부담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임차인이 아예 책임이 없지는 않다. 집 값을 올려놓는 공사까지는 부담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빌려간 원 상태로는 돌려주는 게 상식 아니겠는가? 그래서 임차인은 자신이 빌린 그 건물에 대해서 빌리기 전 상태로 복구할 의무를 갖게 된다.
민법
제623조(임대인의 의무)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존속 중 그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
제615조(차주의 원상회복의무와 철거권) 차주가 차용물을 반환하는 때에는 이를 원상에 회복하여야 한다. 이에 부속시킨 물건은 철거할 수 있다.
결국 모텔 사장과 투숙객은 단기 임대, 임차 관계이다. 만약 숙박 계약을 통해 1박을 하기로 하였다면 숙박객은 사장에게 방을 임대하였고, 이를 다시 원상에 회복하여 돌려줘야 할 의무가 생긴다. 근데 이 사례에서의 문제는 그 돌려줘야 할 물건이 몽땅 타버려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경우 사장은 그 투숙객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단순히 도의적인 차원에서의 손해배상이 아니라 민법 상 권리가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민법
제390조(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자의 고의나 과실없이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보험회사 B의 주장은 여기서 시작된다. 주인 A와 투숙객 C는 임대차 관계이며, C가 불을 낸 원인은 아닐지언정 빌려쓰고 있는 그 방의 관리자로서 그 주의의무를 다했다고는 보지 않는다는 것, 쉽게 말해 불을 끄기 위해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채무자의 고의, 과실이 없는 것은 아니니 C는 A에게 손해를 배상하여야 하고 이를 보험회사인 B가 해주었으니 C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겠다는 뜻이다. 민법상 관계를 따지고 보면 사실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이제 보험회사 B만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 뿐이다. C는 이제 자신이 주의의무를 다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민법 제390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무리 임대차 계약이라도 숙박업과 월세 살이는 다르다.
지금까지 내용으로만 보면 오히려 자신의 억울함을 투숙객인 C가 증명을 해야 하는 답답한 상황으로 보인다. 그것도 상대는 회사 안에 전문 법률 대응팀을 가지고 있는 대형 보험회사다. 그리고 결론은 '불이 났고, 그 자리엔 본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정말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됐든 실제로는 숙박업소 투숙객이지 임대차계약 관계는 아니다. C입장에서는 단순히 투숙했을 뿐인데 이런 의무를 지게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너무 불합리해 보인다.
공중위생관리법
제4조(공중위생영업자의 위생관리의무등) ①공중위생영업자는 그 이용자에게 건강상 위해요인이 발생하지 아니하도록 영업관련 시설 및 설비를 위생적이고 안전하게 관리하여야 한다.
아무리 임대차 계약으로 본다하더라도 모텔 사장 A는 공중위생관리법에 의해 전 투숙객에 대한 안전의 책임이 있는 자이다. 그런데도 내가 투숙했다는 이유로 그 방에 대한 주의의무가 투숙객인 자신에게 있다는 주장은 너무 억울하다. 이에 판례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숙박업자와 고객의 관계는 통상적인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와는 다르다. … 숙박업자는 고객에게 객실을 제공한 이후에도 필요한 경우 객실에 출입하며 고객의 안전 배려 또는 객실 관리를 위한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숙박업자가 고객에게 객실을 제공하여 일시적으로 이를 사용·수익하게 하더라도 객실을 비롯한 숙박시설에 대한 점유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객실을 비롯한 숙박시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숙박기간 중에도 고객이 아닌 숙박업자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아무리 판례가 숙박업을 단기 임대차 계약이라고 본다 하더라도 그 본질은 공중위생관리법에 의한 숙박영업인 것에는 변함이 없고, 그렇다면 이것은 투숙객이 원상태로 복구하여 돌려줘야 하는 임대차 관계로써의 의무까지 부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모텔 사장의 부담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사장 A와 보험회사 B 간의 약관에 의한 화재보험금 지급이니 이를 C에게 구상권 청구할 수는 없다고 판결하였다.
그렇다면 임차인이 임대차기간 중 목적물을 직접 지배함을 전제로 한 임대차 목적물 반환의무 이행불능에 관한 법리는 이와 전제를 달리하는 숙박계약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고객이 숙박계약에 따라 객실을 사용·수익하던 중 발생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화재로 인하여 객실에 발생한 손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숙박업자의 부담으로 귀속된다고 보아야 한다.
<참고> 원심 판결의 내용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보험회사가 괜히 트집잡아서 C의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까지 물고 늘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원심 판결을 통해 보험사가 왜 C에게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임대차 목적물 반환의무를 주장하였는지 보면 위 사안에 대한 깊은 이해가 가능하기에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이번 사례에 맞추어 기존 판례를 살짝 각색하여 소개한다.
원심 판결문, 보험회사 B의 주장(서울중앙지법 2021가단5321821)
투숙객 C는 이러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위반하여 담배꽁초를 버렸는바, 이와 같은 과실로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다.(화재 발생의 원인도 C라고 주장)
또한 C는 연소가 발생하지 않도록 즉각적인 진화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파 오른쪽(노래방 기기, TV 벽면 방향)에서 불꽃을 목격하였음에도 이를 손으로 진화하려고 있고, 진화가 되지 않자 객실 안에 있는 수돗물에 수건을 적셔 불을 끄려고 노래방 문을 열자 산소가 공급되면서 불꽃이 급격히 확대되게 한 과실이 있다. 따라서 C는 이 사건 화재에 대하여 일반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하고, 피고 회사는 C는 책임보험계약을 체결한 보험회사로서 피고들은 연대하여 보상한도액 범위 내에서 보험금지급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어찌됐든 대법원까지 왔으니 같은 사례를 3번째 검토하고 있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화재의 발생원인에 대해서 불명이라는 점은 보험회사도 인정하고 있다. 맨 처음 주장이기에 발생 원인에 관한 부분도 주장하고 있을 뿐이지 대법원에까지 원인 규명에 대한 판단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보험회사는 결국 C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다 태웠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C가 노래방 문을 열면서 불이 급격하게 번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보험회사가 모텔 사장 A에게 지급해야 할 지급액이 훨씬 늘어났는데, C도 보험이 들어져 있으니 C가 계약한 '보험회사'가 이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위 소송의 피고가 투숙객 C + 투숙객 C가 계약한 보험회사이다.
모든 소송이 대법원까지 가서 싸운다는 것은 어찌됐든 양쪽의 주장이 모두 못 들어줄 정도는 아니라는 걸 반증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이 세상이 꼭 강자만을 위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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