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3두44061 판결(2023. 11. 2.) -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9조 제2항(배우자 상속공제)
남편은 건물을 처분한 뒤 현금을 받아 A와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제3자와 매매계약을 체결했으나 이를 끝내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이에 A는 남편의 뒤를 이어 건물을 상속받은 뒤 제3자와 했던 계약을 끝까지 이행하였다. 다만 A는 어차피 주인이 정해졌기에 자신에게 상속 등기 하지 않고 그대로 3자에게 넘겨주었다. 관할 세무서에서는 이를 상속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상속세의 가장 큰 혜택인 '배우자 상속 공제'를 받지 못할 것 같은 A는 고민이 많다. |
세법의 가장 큰 덕목은 바로 '애매모호'이다. 도대체가 법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 '애매모호하다'는 표현은 반대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언어이기도 하다.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경제는 패러다임이 자주 바뀌는 등 빠른 세상을 살고 있는 인간사회의 속도를 법률이 따라잡기란 쉽지가 않다. 법이란 안전하고 원활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 약속을 이용하여 개인의 행동을 제약하고 자유를 억압하기 때문에, 법률을 제정하는 것도 신중해야 하지만 이를 개정하는 것 역시 여러 각도로 검토하고, 부작용을 진단해야 하며 그마저도 개인이 함부로 개정할 수 없게 국회를 통해 개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법이 사회의 속도를 따라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세법은 특히나 국가 경제와 밀접한 분야이기에 다른 법들에 비해 더욱 민감할 필요가 있다.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는 대원칙이 천 년 뒤 '사람은 죽여도 된다.'로 바뀌긴 어렵니만,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지나치게 상승하고 있는 담배 소비율을 줄이기 위해 담배소비세를 올려야 한다는 것은 내일 당장 바뀌더라도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물론 흡연자는 반대하겠지만... 그렇기에 국가 경제 정책은 세계정세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경제적 위기가 다가왔을 때 정책적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세법은 다른 법에 비해 더더욱 변화에 민감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법이 바뀌기란 쉽지가 않다. 특히 법률의 제정, 개정 절차는 헌법에서 정하고 있기에 내 입맛에 맞춰 그 절차를 간소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법학자들은 이 부분에서 많은 고민을 하였고 그 끝에 도달한 결과는 바로 '그냥 애매하게 써놓자.'이다.
무엇을 징수할지 어려우면, 우선 다 징수하고 보자. 포괄주의
A는 우리나라 1,000억대의 부자이다. A는 자신의 현금과 부동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지만, 현재 세법이 현금, 부동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면 20%의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한다. A는 국가에 낼 200억이 너무 아깝다. A는 수많은 고민 끝에 세법이 현금과 부동산만을 상속재산으로 본다는 사실을 깨닫고 법인을 설립 후 1,000억짜리 주식 1주를 발행하여 A에게 주려고 한다. 하지만 이를 알아 챈 정부는 세법의 개정을 신속하게 하여 유가증권도 상속의 대상으로 추가하였다. A는 너무 억울했지만 다른 꼼수를 생각해낸다. 1,000억 출자를 통해 법인을 설립 후 그 주식을 1주를 500원에 A에게 증여하였다. 이후 법인의 이름으로 이 주식을 다시 1,000억에 구매하여 A에게 구매대금을 지급하였다. 이는 기본적으로 A가 자식에게 준 것이 아닌 법인이 A의 자식에게 대금을 지급한 것이기에 상속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물론 그 법인을 A의 돈으로 만들었지만 말이다. 정부는 물론 이런 움직임을 미리 알아차리고 법을 신속히 개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때는 너무 늦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였다. 정부는 실질적으로 상속(또는 증여)임에도 불구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까지 당하니 정부에서도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가 없다. 이에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하기로 한다. 우선 누군가의 죽음으로 배우자, 자녀가 받는 모든 자산, 형태, 형식을 불문하고 그 모든 것을 상속으로 본 뒤, 상속이 아닌 예외 만을 열거해 놓기로 한다. 우선 뺏고 보는 것이다. 과거에는 정부가 '이건 상속이야!'라고 변화에 맞서야 했지만, 이젠 상속인이 '이건 이제는 상속이 아니잖아!'라고 변화에 맞서야 하게 되었다. 이것이 세법이 가지는 가장 애매한 원칙 '포괄주의'이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3. “상속재산”이란 피상속인에게 귀속되는 모든 재산을 말하며
가. 금전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있는 모든 물건
나. 재산적 가치가 있는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모든 권리
무엇으로 징수할지 고민이라면 실제 내용에 따라 징수하자. 실질과세
무엇을 징수할지는 정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떤 방법으로 주는지에 따라 그 꼬리표는 다르게 붙는다. A가 B에게 건물(시가표준액 5억)을 준다고 가정해보자. A와 B가 부자관계이며 무상으로 준 거라면 증여가 된다. 단, A의 사망으로 준 거라면 이는 상속이 된다. A와 B는 서로 모르는 사람이며 돈을 주고 거래한 거라면 A는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A가 부동산매매업을 하는 사람이면 이는 사업소득이 된다. 그마저도 아니고 A가 건축업자이며 자기가 지은 건물이라면 상품을 팔았으니 부가가치세를 내야 하며, 한발 더 나아가 A가 법인 소속 건축업자라면 A가 속한 법인이 법인세를 내야 한다. 모두 다 건물을 B에게 등기이전한 것이지만 그 내용에 따라 소득의 방식이 달라진다. 행위는 하나인데 왜 이걸 어렵게 나누어 고민을 해야할까? 어차피 5억의 건물이 B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 말이다.
각각의 세금, 위의 사례에서의 상속·증여세, 소득세, 부가세, 법인세 중 어떤 꼬리표를 다냐에 따라 A와 B가 납부해야 할 세금이 달라지게 된다. 자본주의의 가장 1원칙은 '모든 사람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위 사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의해보자. A와 B는 부자 관계이며, 아들인 B는 무주택자이다. A는 2억에 취득한 아파트를 5억에 C에게 팔고 싶지만 그러기엔 3억에 대한 양도소득세 약 8,700만원 정도가 너무 아깝다. 그래서 A는 무주택자인 아들 B를 이용하기로 한다. 우선 A는 B에게 아파트를 증여하였고, 이후 B는 C에게 아파트를 팔았다. B는 1세대 1주택자이기 때문에 C에게 아파트를 팔 때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으므로 A가 B에게 한 증여에만 세금이 붙는다. 5억 아파트에 대한 증여세는 약 7,700만원 정도이다. 똑같은 결과였지만 증여를 통하자 세금이 1,000만원 덜 붙었다. 모든 사람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하였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부터 1주택이 없는 자식을 가진 부모들은 양도소득세를 낼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양도소득세에서는 이를 양도로 보고 증여로 이득 본 1,000만원을 더 징수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 내용은 증여가 아닌 양도라는 것이다.
소득세법
제101조(양도소득의 부당행위계산)
② 거주자가 제1항에서 규정하는 특수관계인에게 자산을 증여한 후 그 자산을 증여받은 자가 그 증여일부터 10년 이내에 다시 타인에게 양도한 경우로서 제1호에 따른 세액이 제2호에 따른 세액보다 적은 경우에는 증여자가 그 자산을 직접 양도한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간단하게 모든 소득에 대해 일정한 세율을 붙히면 행정력도 아끼고 좋지 아니한가?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세법은 국가의 경제에 아주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분야 중 하나이다. 대기업에게는 법인세 조금 더 내라고 기업이 휘청하지는 않지만 중소기업, 자영업자에게는 사업소득세 한 번의 개정으로 사업이 흔들릴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스타트업 회사들이 적어도 세금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창업을 두려워한다면 제2의 네이버, 카카오는 나오지 않는다. 부동산 양도소득세가 너무 높으면 이사가 어려워 지역도시들로의 인구 유입이 어렵지만, 양도소득세가 너무 낮으면 모든 부동산이 투기 대상이 되어 집 값이 천정부지로 상승하게 된다. 이렇듯 세금은 징수하려는 대상의 성격에 따라 정책적으로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세금을 징수할 때 이것의 실제 내용은 무엇인지를 명확히 구별해야 조세제도가 올바르게 작동하게 된다. 이를 법에서는 실질과세라 한다.
국세기본법
제14조(실질과세)
① 과세의 대상이 되는 소득, 수익, 재산, 행위 또는 거래의 귀속이 명의(名義)일 뿐이고 사실상 귀속되는 자가 따로 있을 때에는 사실상 귀속되는 자를 납세의무자로 하여 세법을 적용한다.
② 세법 중 과세표준의 계산에 관한 규정은 소득, 수익, 재산, 행위 또는 거래의 명칭이나 형식과 관계없이 그 실질 내용에 따라 적용한다.
아무리 실질이라도 결국 그 법이 존재하는 이유까지 부정할 수 없다.
이제 판례의 사례를 살펴보자. 상증세법 19조는 상속의 경우 배우자에게만큼은 특별히 공제를 해주는 제도가 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9조(배우자 상속공제)
① 거주자의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되어 배우자가 실제 상속받은 금액의 경우 다음 각 호의 금액 중 작은 금액을 한도로 상속세 과세가액에서 공제한다(각 호 생략)
② 제1항에 따른 배우자 상속공제는 과세표준신고기한의 다음날부터 9개월이 되는 날까지 배우자의 상속재산을 분할(등기ㆍ등록ㆍ명의개서 등이 필요한 경우에는 그 등기ㆍ등록ㆍ명의개서 등이 된 것에 한정한다)한 경우에 적용한다. 이 경우 상속인은 상속재산의 분할사실을 배우자상속재산분할기한까지 납세지 관할세무서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③ 제2항에도 불구하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득이한 사유로 배우자상속재산분할기한까지 배우자의 상속재산을 분할할 수 없는 경우로서 배우자상속재산분할기한의 다음날부터 6개월이 되는 날까지 상속재산을 분할하여 신고하는 경우에는 배우자상속재산분할기한까지 분할한 것으로 본다. 다만, 상속인이 그 부득이한 사유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배우자상속재산분할기한까지 납세지 관할세무서장에게 신고하는 경우에 한정한다
배우자가 상속공제를 받기 위한 대 전제가 바로 제2항 괄호 안의 내용이다. 배우자가 재산을 상속받은 경우 그 재산이 배우자 명의로 등기가 되어야 그것을 진짜 준 것으로 보고 공제를 하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A는 자신의 앞으로 등기를 하지 않고 피상속인인 남편이 살아있었을 당시 맺었던 매매계약을 그대로 진행하였다. A는 해외에 거주하는 자로 신고납부, 등기이전 등 행정 업무를 보기가 어려운 상황이였고, 모든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하는 등 조세회피의 목적도 없었기에 아무리 A 자신에게 등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실제 남편의 사망으로 상속을 받은 것도 맞고 오히려 남편이 맺은 매매계약을 완수하고자 하는 신의를 지키기 위해 부동산등기법에 따라 바로 등기이전을 했을 뿐이지 그 실질은 상속이 맞으니 배우자 상속공제를 해주어야 한다며 세무서장을 상대로 상속세부과처분취소 소송을 진행하였다.
부동산등기법
제27조(포괄승계인에 의한 등기신청) 등기원인이 발생한 후에 등기권리자 또는 등기의무자에 대하여 상속이나 그 밖의 포괄승계가 있는 경우에는 상속인이나 그 밖의 포괄승계인이 그 등기를 신청할 수 있다.
판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상증세법 제19조에 따른 배우자 상속공제는, 배우자 간 상속이 수평적 이전이고 세대 간 이전은 아니므로 이를 감안하여 상속재산 중 일정 비율까지는 과세를 유보한 후 잔존배우자 사망 시 과세하도록 하는 이른바 ‘1세대 1회 과세원칙’과 잔존배우자의 상속재산에 대한 기여인정 및 생활보장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구 상증세법 제19조 제2항에 따라 상속개시 후 배우자상속재산분할기한 내 배우자 앞으로 실제 상속재산분할이 완료되어야 배우자 상속공제를 허용하는 것은 상속재산 미분할 상태로 일단 배우자 상속공제를 받은 다음 추후 협의분할을 거쳐 자녀에게 재산을 이전하는 방법으로 부를 무상이전하려는 시도를 방지하고 상속세에 관한 조세법률관계를 조속히 확정하기 위한 데 그 입법 취지가 있다.
배우자 상속공제라는 것은 부부가 함께 일군 자산에 대한 기여를 인정하고 남은 배우자의 생활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상속재산 배분 대상인 자식들과는 달리 배우자에게 주는 특별혜택이다. 그래서 배우자 상속공제는 있지만 자녀 상속공제는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공제의 혜택이 자녀에게 돌아가는 것을 극도로 주의하고 있어 반드시 배우자 앞으로 상속재산분할이 완료되어야, 즉, 배우자 명의로 등기가 완료돼야 공제를 허용한다는 의미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선 A가 모든 상속재산에 대해서 공제를 받은 후 다시 협의하여 상속재산을 분할하면 그 혜택이 자녀에게까지 미치게 되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협의에 의한 분할은 언제든 다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법
제1013조(협의에 의한 분할) ①전조의 경우외에는 공동상속인은 언제든지 그 협의에 의하여 상속재산을 분할할 수 있다.
A는 실제로 등기를 안 했을 뿐이지 상속을 받은 것도 사실이며, 조세회피의 목적이 없었기에 국세의 대원칙에 따라 실질 내용에 의해 공제해 줄 것을 주장하지만, 배우자 상속공제에 등기된 재산만을 한정하도록 규정한 입법취지를 벗어나면서까지 해석하는 것은 실질과세가 아니라는 것이다. 위 사건의 원심인 고등법원의 판례의 구절을 빌려 마무리하겠다.
배우자 상속공제가 조세회피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상속세에 관한 조세법률관계를 조기에 명확하게 확정할 필요가 있고, 본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와 같은 규율 방식(등기된 재산만 인정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 실질과세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들의 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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