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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로 보는 이야기

사람을 때려도 무죄? 범죄라는 것은 생각보다 저지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정당행위

by KatioO 2024.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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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23도10768 판결(23. 11. 2.) - 형법 제257조(상해), 제20조(정당행위)

복싱학원 코치를 하고 있는 A는 회원등록을 취소하려는 손님 B와 관장 C가 치고받고 싸우자 이를 말리는 중이다. 그 때 A는 B가 갑자기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움켜쥐는 모습을 본다. A는 혹여나 B가 칼을 들고 관장을 찌를까 싶어 그를 지키기 위해 B가 손을 주머니에서 빼지 못하도록 잡고 물건을 확인해보니 다행히도 녹음기가 들어있었다. 하지만 B는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여 확인해보니 손가락 골절을 입었다. A는 관장을 보호하고 싶었을 뿐이지만 상해의 결과를 낳았다.

 

형법은 '어떤 것을 범죄라고 하는지' 그리고 '범죄를 저지르면 어떻게 혼내줄 것인지'를 정한 법이다. 이번 사례와 관계가 깊은 상해죄를 살펴보자.

제257조(상해)  ①사람의 신체를 상해한 자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상해의 범죄라는 것은 '사람의 신체를 상해한 것'이며, 그러한 상해죄를 저지르면 징역, 자격정지, 벌금 중 하나의 벌을 받게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형법이 하고자 하는 말은, 사람의 신체를 상해하면 벌을 받으니 상해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찜찜한 구석이 남아있다. 우리는 '상해를 입힌다.'는 추상적인 개념은 삶을 살아오면서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어디까지를 '상해'라고 할 수 있는가 기준을 정해달라고 하면 쉽게 대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정하는 것은 형법에서만큼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에 따라 7년 이하의 징역을 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해'는 그나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라도 드는 단어이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사람'이냐는 질문에는 사람이 무엇인지도 모르냐며 코웃음 칠 것이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지난번 포스팅에 담았으니 이 개념도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만 강조하고 넘기겠다.

 

일상생활을 몰래 촬영한 것은 음란물인가?

대법원 2021도4265 판결(23. 11. 16.) -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 제6항(음란물소지) A는 토렌트를 이용해, 누군가가 고등학교 여자기숙사에서 옷을 갈아입는 장면을 몰래 촬영한 동영

wkqtkdtlr.tistory.com

이번에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 이후의 이야기이다. 즉, '사람의 신체를 상해한 자' 까지는 맞다고 가정하고 접근한다는 뜻이다. 응? 그럼 범죄이니 더 생각할 문제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범죄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결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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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요건을 만족한다고 모든 게 위법하지는 않다. 

'사람의 신체를 상해한 자'에는 생각보다 많은 개념이 포함되어있다. 우선 사람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신체는 어디까지 포함한 것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디까지를 상해라고 하는지. 이렇게 조문에 쓰여있는 단어 하나하나가 가지는 법적 의미를 객관적 구성요건이라고 한다. 그리고 범죄자가 '고의적으로 그 사람을 상해를 입혔는가?'와 같이 조문에는 없지만 딱 '상해죄!'라고 결정하는 요건들을 주관적 구성요건이라고 한다. 객관적 구성요건을 모두 만족했으나 주관적 구성요건인 '고의'가 없다면 우리는 범죄자에게 과실치상죄를 물을 수 있지 상해죄를 물을 수 없게 된다.

 

당장에 상해죄에서 말하는 '상해'란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 자체만으로 책 한 권은 만들 수 있을 만큼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은 문제이다. 이번에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는 결국 객관적, 주관적 구성요건을 모두 만족하면 이를 '범죄'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경찰이 나를 아무이유 없이 구속하려 한다. 왜 구속하는지 말을 해 주지도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이 사람이 신분증도 보여주지 않고 사복을 입고 있으니 경찰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렇게 끌려가다간 어디 팔려가도 알 수 없게 생겼다. 여기를 벗어나야 할 것 같다. 결국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강타하고 도망쳐 나왔다. 그것도 강하게 때려서 어디 하나 부러져야 날 쫓아오지 못할 것이니, 다치게 할 의도로 강하게 입 부위를 주먹으로 폭행하였다. 하지만 그 사람은 당시 나에게 맞아 앞니가 두 개 부러지는 상해를 입어 나를 고소하였다. 나는 '사람의 신체를 상해한 자'이며, 고의도 있었다. 나는 '상해죄'로 처벌받는 것이 정당한가?

 

우리나라 형법은 구성요건을 충족했더라도 나의 행동이 정당하다면, 즉, 위법하지 않았다면 그 행위를 처벌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에서는 이를 위법성을 조각한다고 하며, 형법에서는 총 4가지의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20조(정당행위)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제21조(정당방위) ①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法益)을 방위하기 위하여 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제22조(긴급피난) ①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제23조(자구행위) ① 법률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서는 청구권을 보전(保全)할 수 없는 경우에 그 청구권의 실행이 불가능해지거나 현저히 곤란해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하여 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결국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범죄였다는 이야기이다.

위법성을 조각한다는 것은 범죄라 평가할 만한 행동을 하긴 했지만 그러한 행동을 한 이유가 정당했다 또는 위법하지는 않았기에 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범죄라는 것이고 해석하기에 따라선 범죄를 봐준 꼴이다. 그렇다면 위험하지는 않은가? 범죄를 저지르고도 교묘하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셈이다. 법을 조금만 안다면 합법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도구로 쓰일 가능성도 있다.

 

많이 들어봤을 이야기이다. '9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 누군가는 형법 20~23조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한 명이라도 억울하게 처벌받는 일이 없다면 그것만으로 입법의 취지는 달성한 것이다. 다만,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판례는 이를 인정하기에 필요한 조건들을 굉장히 까다롭게 준비해 놓았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서 내가 누군가를 상해를 입히거나 죽이지 않으면 내 자신의 안위를 도모할 수 없을 때 상해, 살인을 하더라도 벌하지 아니하겠다는 것이다. 그 중 이번 사례는 정당행위에 대한 해석을 하고 있다. 

사회상규에 의한 정당행위를 인정하려면, 첫째 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둘째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셋째 보호이익과 침해이익과의 법익균형성, 넷째 긴급성, 다섯째로 그 행위 외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 이에 비하여 행위의 긴급성과 보충성은 수단의 상당성을 판단할 때 고려요소의 하나로 참작하여야 하고 이를 넘어 독립적인 요건으로 요구할 것은 아니다.(2017도2760)

 

즉, ① 정당한 이유로 한 행위여야 하며 ② 그 방법이 너무 긴급하고, 그 방법 외에는 방법이 없었어야 하고 ③ 그 행위가 선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여야 한다는 것이다. 위 사례에 대해선 판례가 이 3가지 부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살펴보자.

피해자도 복싱클럽에 다닌 경험이 있는 등 상당한 정도의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그 직전까지도 공소외 1과 상호 간 몸싸움을 하는 등 급박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으며, 그 경위를 보더라도 피해자가 공소외 1로부터 질책을 들은 다음 약 1시간이 경과된 후 복싱클럽을 다시 찾아와 강하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공소외 1과 몸싸움까지 하게 된 것으로, 공소외 1·피해자 사이의 몸싸움은 일시적·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기보다는 피해자가 공소외 1에 대한 항의 내지 보복의 감정을 가진 상태에서 계획적·의도적으로 다시 찾아옴에 따라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구나 당시 위 복싱클럽의 코치로서 관장과 회원 사이의 시비를 말리거나 더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 위치에 있던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우발적으로 관장과 시비가 붙은 게 아닌 1시간 뒤 다시 찾아와 항의하였다면 이건 보복의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하며, 당시 A의 입장이 위 복싱클럽의 코치였다는 점에서 자신이 강제적으로 위 사항을 막아야만 했던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았다. 또

피해자가 가지고 있었던 ‘휴대용 녹음기’와 피고인이 착각하였다고 주장하는 ‘호신용 작은 칼’은 크기·길이 등 외형상 큰 차이가 없어 이를 쥔 상태의 주먹이나 손 모양만으로는 양자를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므로 … 몸싸움을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열세에 놓인 피해자가 굳이 주머니에서 불상의 물건을 꺼내어 피고인에 의해 강제로 왼손 주먹을 펼 때까지 이를 움켜쥐고 있었던 점에다가 피해자가 공소외 1과의 시비 차원에서 계획적·의도적으로 다시 복싱클럽을 찾아 온 경위를 알고 있었던 사정까지 종합하면,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피해자가 움켜쥔 물건을 육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공소외 1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가할 수 있는 위험한 물건에 해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장 C와 손님 B 및 코치 A가 보복을 목적으로 몸싸움을 하는 긴급한 상황(긴급성)에서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기에 손가락을 강제로 펴게 힘을 쓰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보았으며(보충성)

피고인의 수사기관부터 원심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진술도 ‘피해자가 호신용 작은 칼 같은 흉기를 꺼내는 것으로 오인하여 이를 확인하려고 하였다.’는 취지이고, 피해자 역시 수사과정에서 ‘피고인이 상해를 입힐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쥐고 있던 물건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라고 같은 취지로 진술

 

위험한 물건을 확인하는 데 까지만 힘을 썼고, 그 외의 추가적인 폭행이나 선을 넘는 범위의 다른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라고 보았다. 특히,

행위의 긴급성과 보충성은 다른 실효성 있는 적법한 수단이 없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지 ‘일체의 법률적인 적법한 수단이 존재하지 않을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2017도2760)

 

회유를 해본다든지, 경찰 입회 하에 이야기해보자든지, 소비자고발센터를 이용하라든지 적법한 수단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이미 뒹굴고 흉기일지 모르는 것을 막 꺼내고 있는 상황에 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다른 수단이 없었기에 A의 행동이 보충성 충족한다고 판시하였다. 따라서 A의 행동은 정당했고 형법 제20조에 따라 처벌하지 않기로 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여러 부작용으로 인해 우리 판례는 위법성 조각사유, 특히 정당행위와 관련해서는 이를 인정한 경우가 건국이래 100건이 되질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례는 정당행위를 인정한 것이기에 그 전후사정을 잘 살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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