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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로 보는 이야기

나는 일을 했지만 사장이 여러명이면 누구에게 임금을 달라고 해야 하는가?

by KatioO 2024.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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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9다252004 판례(23. 8. 18.) - 근로기준법 제2조(정의)

A는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소속되어 아이돌보미서비스 제공자이다. 지자체에서는 이 사업을 산학협력단에 위탁하여 센터의 운영을 맡겨 놓은 상황이다. A는 근로자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수당을 청구하기 위해 산학협력단에 미지급한 급여를 청구하였으나, 산학협력단은 자기들이 A의 고용주가 아니므로 미지급 임금을 지급할 수가 없다고 한다. A는 일은 했지만, 임금을 지급할 사장은 없다.

 

국가의 행정이란 사회를 유지하고 그 구성원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가 사회를 유지하는 방법에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규정하기도 하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보조하기도 한다. 특히 사회(社會)라는 것은 결국 하나의 집단이므로, 그 구성원의 수를 유지하는 것 역시 그 사회를 주도하는 자들의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 구성원들에게 받은 세금이라는 이름의 기부금으로 출산율을 올리기 위한 여러 정책들을 시행한다. 그 중 대표적인 정책이 바로 '아이돌보미' 서비스이다.

아이돌봄 지원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4. “아이돌보미”란 제7조에 따른 자격을 갖춘 사람으로서 제11조에 따라 지정된 서비스제공기관을 통하여 아이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번 사례의 쟁점은 바로 근로관계이다. 흔히들 사기업에서나 노사문제가 불거지지 정부가 하는 사업에 노사관계가 크게 문제될 일이 있겠냐 싶겠지마는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더러 있다. 정부가 어떤 사업을 하고자 하면 그 사업을 끌고 갈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떤 사업을 진행할 때마다 그 사업에 맞는 공무원을 뽑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필요할 때마다 위탁사업자를 새로이 뽑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다. 생각보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각 부처별로 자신의 사업을 총괄하여 전문적으로 이끌어 줄 센터를 하나 정해 놓고 '예산을 내려줄 테니 너희가 전문적으로 사업을 완수해줘.'라고 위탁하게 된다. 이렇게 하면 정책이 만들어질 때마다 사업을 위탁할 필요가 사라진다. 위 총괄사업자에게 하라고 시키면 되니까. 이렇게 여러 기관들이 얽히고설키니 이젠 누가 사장인지 애매해지기 시작한다. 그런 경우 근로관계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대한 판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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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는 건강가정지원센터를 만들고, 건강가정지원센터는 아이돌보미를 운영한다. 

아이돌보미 정책의 이해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 사례의 근로관계문제는 근원적으로 어떤 구조에서 발생한 것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선 위 사업을 도대체 얼마나 기이한 방법으로 운영하기에 사장은 사장이 아니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위에 언급했듯이, 국가는 행정의 편의를 위해 큰 틀에서 업무를 나눈다. 여성가족부는 크게 가정, 청소년, 아동(성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 인력으로 위 3가지 큰 틀의 모든 정책을 추진할 수는 없다. 그래서 청소년 복지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를, 청소년 보호는 '청소년 보호·재활 센터'를, 아동 성매매 관련해서는 '성매매 피해 아동·청소년 지원센터'를, 그 외에도 각 사업별로 총괄사업부를 만들고 이를 업무 특성에 맞는 법인 또는 재단에 이를 위탁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 중 위 사례의 '아이돌보미' 사업은 건강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사업의 일환이기에 건강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총괄사업부인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이게 도대체 무슨 탁상행정이냐!'며 벌써부터 화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위탁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사업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 공무원 인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아이돌봄 지원법
제4조의2(기본계획의 수립) 
① 여성가족부장관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5년마다 아이돌봄 지원을 위한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이라 한다)을 수립하여야 한다. 이 경우 기본계획은 「건강가정기본법」 제15조에 따른 건강가정기본계획에 포함하여 수립할 수 있다.

11조(서비스제공기관 지정 등) 
① 아이돌봄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제공기관(이하 “서비스기관”이라 한다)을 설치ㆍ운영하고자 하는 자는 여성가족부령으로 정하는 시설, 인력, 운영 등 기준을 갖추고 소재지를 관할 구역으로 하는 시ㆍ도지사ㆍ시장ㆍ군수ㆍ구청장으로부터 지정을 받아야 한다.

 

여성가족부는 건강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사업 총괄을 위해 '건강가정지원센터'를 만들고, 그 사업의 일환으로 '아이돌보미' 사업을 운영해야 한다. 다만 '아이돌보미' 사업은 아이돌봄 지원법에 의해 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제공기관'을 또 설치하여야 한다. 센터, 기관만 만들다가 정책 시작도 못해보고 끝날 판이다. 그래서 이 '건강가정지원센터'를 '서비스제공기관'으로 지정하여 운영을 하고 있는 실태다. 건강가정기본법으로 만든 기관이 아이돌봄 지원법으로 만든 사업을 운영하는 이중적 신분을 갖는 기이한 형태가 시작된다.

 

 

건강가정지원센터 운영을 위해 이를 또 위탁운영한다.

건강가정기본법
제35조(건강가정지원센터의 설치)  ⑤센터의 운영은 여성가족부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민간에 위탁할 수 있다

 

자 이젠 그 센터를 운영하기 위해 민간에 위탁한다. 이번 판례의 대표 피고인의 경우 광주광역시 동구청에서는 '동구건강가정지원센터'를 만들고 그 센터 운영을 '광주대학교산학협력단'에게 맡긴다. 이 산학협력단은 센터의 운영만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지자체에서 만든 '동구건강가정지원센터'는 '아이돌보미' 사업진행을 위해 돌보미들을 모집한다. 즉, 센터의 위탁운영을 하고 있는 '산학협력단'이 아이돌보미를 선발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산학협력단의 주장이다. 이 점의 이번 사례의 논점이다. 

 

 

근로를 제공했고 수당은 못받았지만 이를 지급할 사장이 없다?

이 판례에서는 '아이돌보미'가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인지도 판단하였지만, 내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근로자임은 맞다고 가정하고 누구에게 미지급 급여를 청구해야 하는가였다. 지금까지 이 사업 하나를 위해 어떻게 기관들이 구성되어 있는지 살펴보았으니 이젠 이해할 수 있다. '산학협력단'의 주장은 '그들이 근로자로 인정받는다 하더라도, 그들을 뽑은 건 '건강가정지원센터'니 센터에서 돈을 줘야지?'라는 것이다. 위탁 운영을 본인들이 하고 있음에도 센터에게 급여를 지급하라고 떠넘기는 이유는 결국 '센터(지자체)'에서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센터의 운영만을 위탁받았지 '아이돌보미' 사업을 위한 근로자를 뽑고 신청을 받고 운영하는 건 '센터(지자체)'에서 진행했으니, '센터(지자체)'에서 미지급분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어떤 근로자에 대하여 누가 임금 지급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인가를 판단할 때에는 계약의 형식이나 관련 법규의 내용에 관계없이 실질적인 근로관계를 기준으로 하여야 하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를 판단할 때에 고려하였던 여러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2007다7973) … 구 아이돌봄지원법에 따르면 아이돌봄서비스 사업은 서비스기관을 통하여 아이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서비스기관이 아이돌보미와 표준계약을 체결하고 이용가정을 배정하는 주체가 되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보조금의 지급, 서비스기관의 지정 및 그 취소 등을 통하여 아이돌봄서비스 사업을 지원하고 서비스기관의 업무수행을 관리·감독할 뿐이다. … 구 아이돌봄지원법 제11조 제1항은 ‘서비스기관을 설치·운영하고자 하는 자가 일정한 기준을 갖추어 지방자치단체장으로부터 서비스기관의 지정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서비스기관으로 지정을 받는 주체인 ‘서비스기관의 설치·운영자’가 아이돌봄서비스 사업을 실질적으로 영위하는 사업주체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하지만 법원은 결국 민간 위탁 운영자인 '산학협력단'에서 지급하라고 판시하였다. 건강가족지원법에 의해 '건강가정지원센터'는 위탁 운영을 하더라도, 서비스제공기관으로써는 설치, 운영을 지정 받았으니 적어도 아이돌봄 지원법에 의한 '서비스제공기관'으로는 설치, 운영자라는 것, 즉, '아이돌보미' 사업은 '산학협력단'이 실질적인 사업주체이므로 이와 관련된 급여의 사용주로서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라 판결하였다. 

 

사용주는 근로서비스를 받고 있는 사람이며,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계약의 관계이기 때문에 근로자와 사업자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이를 특정하기가 어려울 일이 없지만, 이렇게 정부가 하는 사업에서는 그 관계가 불명확할 수 있다. 그렇기에 단순한 근로기준법에서의 상황이 아니라 그 사업을 이루고 있는 전반적인 통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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