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2노1087 판결(23. 6. 2.) - 형법 제266조(과실치상)
양봉원에서 사업을 하는 A는 손님 B를 자신의 양봉원에 초대하였고, 이에 안으로 들어가던 B는 A가 키우던 대형견이 갑자기 달려들자 깜짝 놀라 바닥에 넘어지며 전치 8주의 상해를 입었다. B는 A에게 위 상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검사는 A를 과실치상죄로 기소하였다. A는 자신이 한 행동도 아닌 일에 책임을 물으니 억울하다. |
법을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처벌법은 동물보호법일 것이다. 동물보호법을 먼저 살펴보면
동물보호법
제21조(맹견의 관리) ① 맹견의 소유자등은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준수하여야 한다.
3. 맹견이 사람 또는 동물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시행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따를 것
제97조(벌칙) ②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5. 제21조 제1항 각 호의 어느 하나를 위반하여 사람의 신체를 상해에 이르게 한 자
제99조(양벌규정) 법인의 대표자나 법인 또는 개인의 대리인, 사용인, 그 밖의 종업원이 그 법인 또는 개인의 업무에 관하여 제97조에 따른 위반행위를 하면 그 행위자를 벌하는 외에 그 법인 또는 개인에게도 해당 조문의 벌금형을 과한다. 다만, 법인 또는 개인이 그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해당 업무에 관하여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반려견이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하도록 주인은 최선을 다하여야 하며, 그렇지 않고 상해를 입힌 경우 97조, 99조에 의해 사용인, 즉, 견주도 처벌을 받게 된다. 다만 동물보호법의 가장 큰 맹점이 바로 그 범행의 주체가 맹견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맹견이 무엇인지 등을 떠나서라도 이번에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위 내용이 아니며, 위 판례의 적용 죄명 역시 동물보호법 위반이 아닌 '과실치상'이다. A는 자신의 반려견이 맹견도 아닐뿐더러, 손님들 진입로 근처까지 올 수 있다 하더라도 목줄도 해놨기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통해 주의의무를 다했다고 주장한다.
형법
제266조(과실치상) ①과실로 인하여 사람의 신체를 상해에 이르게 한 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자신이 기르는 개가 사람을 물었으니 그 주인에게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형법 마인드를 가진 A는 본인이 너무 억울하다고 주장한다. 무엇이 억울한 것일까. 과실치상죄란 의도하지 않은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상해를 입히는 범죄이다. 범죄의 주체가 의도하지 않았다는 건 반대로 그 주체가 의도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즉, 법에 쓰여있진 않아도 자아와 의지를 갖는 사람(법에서는 자연인이라고 한다.)을 주체로 한정하고 있는 꼴이다.
벌써부터 A는 억울하다. B에게 상해를 입힌 것은 A의 반려견이지 A가 아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형법은 엄밀하게 판단해야 한다. 상해를 입힌 주체는 A의 반려견이 맞다. 그렇기에 원칙대로라면 A의 반려견을 재판장에 세워 처벌을 받게 해야 맞다. 재판장에 선 A의 반려견은 사람이 아니니 과실치상죄의 주체가 될 수 없으니 A의 반려견은 과실치상죄에서만큼은 무죄를 선고받고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검사는 A를 상대로 과실치상죄를 물어 기소하였다.
인과관계는 반드시 직접적일 필요가 없다.
형법
제17조(인과관계) 어떤 행위라도 죄의 요소되는 위험발생에 연결되지 아니한 때에는 그 결과로 인하여 벌하지 아니한다.
우리 형법은 어떤 범행의 결과가 나타난 것에 대해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문화하고 있다. 하지만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개념은 너무나도 모호하다. 甲이 화가 나 乙의 뺨을 1대 때렸고, 乙이 넘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쳤다. 이후 병원으로 가 한 달간 치료를 받던 중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甲이 폭행한 지 정확히 한 달이 지난 시점이다. 甲의 폭행이 원인이 되어 乙이 사망하였다고 볼 수 있을까(2011도17648)? 甲이 화가 나 乙의 뺨을 1대 때렸고, 이틀 뒤 멱살을 잡고 乙의 뺨을 1대 더 때렸다.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자던 甲은 다음날 아침 乙이 침대 밑에서 죽어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甲의 폭행이 원인이 되어 乙이 사망하였다고 볼 수 있을까(2005노1861)?
전자의 경우는 인과관계를 인정하여 죄를 물었고, 후자는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아 죄를 묻지 않았다. 전자의 후두부 손상은 대체로 기도흡입 등 폐렴(사인)과 관련된 합병증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고, 그로 인해 사망하였다면 결국 甲의 폭행이 후두부 손상으로 이어져 폐렴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판시했으며, 후자의 경막하출혈(사인)은 乙이 침대에서 잤지만 바닥에서 발견되었기에 떨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쳤을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도 없어, 甲의 폭행이 사망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그 인과관계를 부정한 것이다. 행위가 너무나도 닮은 두 사건이지만 당시의 상황에 따라 그 결과는 유, 무죄가 바뀌었다. 법의 언어가 이렇다.
그럼 인과관계만 확실하다면 죄를 물을 수 있는가? 그건 또 고민이 필요한 문제이다. 甲의 폭행으로 乙이 죽었다고 가정하자. 甲이 폭행하지 않았다면 乙은 아직 살아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甲이 애초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乙을 폭행하지 않았을 테니 乙이 죽을 일도 없지 않은가? 결국 甲의 모친도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甲의 모친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甲이 세상에 나올 일이 없었으니 乙도 살아있지 않았을까? 결국 甲의 외조모도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단군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모든 범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여도 甲이 원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그것은 직접적인 원인이었는지 검토해야 한다.
단군에게 죄를 묻던 위의 사례를 들어 보자. 甲은 적어도 자신이 휘두른 주먹에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예상은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본인이 폭행하지 않으면 내 주먹에 사람이 죽을 일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다만 甲의 모친은 자신이 낳은 아들이 23년 8개월 7일 뒤 乙에게 주먹을 휘둘러 사람을 죽일 것이라고 예상하고는 이런 자식은 낳을 수 없다며 낙태할 수는 없다. 이를 법에서는 예측가능성이라 한다. 甲은 乙의 사망의 예측가능성이 있었지만 甲의 친모에게는 예측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또한 乙의 사망을 위해 매일같이 저주를 내린다던지, 신께 기도를 올린다던지의 행동이 아닌 주먹을 휘두르는 직접적인 행위를 하였다. 이를 법에서는 행위반가치 또는 위험을 창출했다고 표현한다.
그 원인행위로 인한 결과가 예측 가능했고 위험을 창출했다면 우리 형법은 그 원인행위를 한 사람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보고 그에게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이를 객관적귀속이라고 한다. 다만, 객관적귀속은 인과관계와 달리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에 객관적귀속이라는 것을 살펴봐야 하느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나뉜다. 하지만 우리 판례는 객관적귀속을 확인하고 있다는 것을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사례의 판례를 살펴보자.
피고인이 운영하는 양봉원은 사유지이기는 하나 불특정 다수의 손님들이 꿀이나 벌을 구입하기 위해 드나드는 영업장이므로 … 사무소 옆 개집에서부터 甲이 서 있던 영업장 입구까지 길게 연결된 로프에 걸려 있어 행동반경의 제한은 있으나 진입로를 따라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했던 대형견(원인1, 관리소홀)도 甲을 향해 짖으며 달려왔으므로, 당시 甲으로서는 개가 자신을 향하여 달려오자 매우 놀라 바닥에 넘어졌고, 피고인은 대형견과 소형견이 영업장 입구나 폭이 넓지 않은 진입로 등에서 함께 손님에게 짖으면서 달려들 경우 놀란 손님이 넘어져 다치는 등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것(예측가능성)으로 보이고,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소형견에게 목줄을 하거나 대형견의 목줄을 고정시키는 등으로 개들이 한꺼번에 손님에게 달려들지 않도록 조치함으로써 위험 발생을 미리 막을 주의의무가 있었음에도 이를 게을리한 것(위험창출, 부작위)으로 판단되는 점, 피고인은 사고가 甲의 부주의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하나, 피고인의 개들이 달려드는 것(원인2) 외에 甲이 넘어질 만한 다른 특별한 요소는 없었던 점(자기위태화 등 예외상황 없음)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위와 같은 과실로 甲에게 상해(결과)를 입게 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다는 이유로,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한 사례이다.
본 사례의 행위 주체는 A의 반려견이 맞다. 하지만 판례는 관리소홀도, 피고인의 반려견들이 달려드는 것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A의 반려견은 과실치상죄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결국 관리소홀의 주체인 A에게도 원인이 있다고 판단하였으니 인과관계는 정리가 되었다. 하지만 판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친절하게도 예측가능성과 위험창출에 대해 빠뜨리지 않고 언급해주었다. 명문화되어 있지 않더라도 객관적귀속이론을 인정하고 있는 모습이다.
판사들이 판례를 작성할 때 말을 일부러 어렵게 써놓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저런 법학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기에 이를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기 쉽게 쓰다 보니 쓸데없는 말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객관적귀속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으니 한 구절 한 구절이 마냥 쓸데없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결국 인과관계도 성립하고 객관적귀속 요건도 만족하니 A는 본인이 직접 상해를 입히진 않았더라도 그 결과에 있어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A는 개가 아니니 과실치상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 A는 이제 억울할 일이 없다. A는 사실 무죄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합의를 봤어야 한다.
형법
제266조(과실치상) ②제1항의 죄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판례로 보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빌려간 물건이 고장났으면 고쳐놔야지?! 그게 건물이라도 말이야. (0) | 2024.01.20 |
---|---|
사람을 때려도 무죄? 범죄라는 것은 생각보다 저지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정당행위 (2) | 2024.01.20 |
실질이냐 형식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포괄주의와 실질과세 (0) | 2024.01.18 |
죽은 뒤에는 말이 없지만 자식들의 입장은 그렇지 않다. 유증과 사인증여 (0) | 2024.01.17 |
일상생활을 몰래 촬영한 것은 음란물인가? (0) | 2024.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