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1도4265 판결(23. 11. 16.) -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 제6항(음란물소지)
A는 토렌트를 이용해, 누군가가 고등학교 여자기숙사에서 옷을 갈아입는 장면을 몰래 촬영한 동영상을 다운로드 받아, 아청법 위반(음란물소지)으로 기소되었다.
|
누군가의 나체를, 그것도 동의하지 않은 채로 촬영했다는 것은 사회통념상 의심의 여지 없이 흔히 말하는 '야동'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성의 탈의 장면을 촬영해서 가슴이나 엉덩이를 훔쳐봤는데, 이게 음란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놈이 정신이 나간 거 아냐?'라고 반응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법의 언어는 다르다. 법은 반드시 명확해야 하며, 다수의 상식적인 생각이 아닌 어느 누가 생각하더라도 이견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이 누군가를 처벌하고자 하는 넓은 범위의 형법(刑法)이라면 더욱이 그 의미가 명확해야 한다. 정말 사소한 단어 해석의 차이로 유·무죄가 바뀌고 징역을 살게 하느냐 마냐의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4년 10개월을 보내던 중 "아 그때 법령해석을 잘못했었네? 너는 무죄였으니 지금이라도 바로 나오렴." 한다면 교도소에서 보낸 그간의 세월을 돈으로 보상해 주는 것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왜 '음란함'을 정의해야 하는가?
우선 왜 우리가 법을 해석하는 데 있어 '음란'이란 것을 정의를 해야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형법 조문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형법 제250조(살인)
①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위 조문 중 '사람을 살해한 자'에서 모르는 단어가 하나라도 있는가?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럼 위 단어를 모두 안다고 하였으니 이번에는 '사람이란 무엇인가?'라고 다시 질문을 한다면? 아마 이에 대한 대답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팔·다리의 유무가, 누군가는 폐로 호흡하는 자를 사람이라 할 것이며, 그 외에도 수만 가지의 방법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만약 하반신이 없는 장애를 가진 자는 다리가 없으니 사람이 아닌 것인가?' 또는 '임신 중인 태아는 폐가 없으니 사람이 아닌 것인가?' 라며 다시 질문을 한다면? 쉽게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사람이 아닌 순간 장애인, 태아를 죽여도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형법 제250조는 반드시 '사람'을 죽인 자만을 처벌한다.
우리가 '사람'이라는 단어를 관념상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법의 언어에서는 이를 명확히 정의해 줄 필요가 여기에 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A의 주장은 너무 터무니 없다고 생각할 테지만, 법의 관점에서는 생각보다 타당한 주장이 될 수 있다.
아동 음란물이란 무엇인가?
그럼 우리는 무엇을 아동 음란물이라고 하는가? 위와 관련된 아청법 조문을 살펴보자.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아동ㆍ청소년성착취물의 제작ㆍ배포 등)
⑤ (소지) 아동ㆍ청소년성착취물을 구입하거나 아동ㆍ청소년성착취물임을 알면서 이를 소지ㆍ시청한 자는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제2조(정의)
5. “아동ㆍ청소년성착취물”이란 아동ㆍ청소년 또는 아동ㆍ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 제4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거나 그 밖의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필름ㆍ비디오물ㆍ게임물 또는 컴퓨터나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한 화상ㆍ영상 등의 형태로 된 것을 말한다.
<제4호에 해당하는 행위>
가. 성교 행위
나. 구강ㆍ항문 등 신체의 일부나 도구를 이용한 유사 성교 행위
다.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접촉ㆍ노출하는 행위로서 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
라. 자위 행위
쉽게 말해서 청소년(19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 야동을 구입, 소지한 자는 1년 이상의 징역이다. 여기서 말하는 '야동'은 아청법 상 '아동·청소년성착취물'을 말하며, 그 동영상은 4호에 해당하는 행위를 내용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4호의 행위를 자세히 보면 가, 나, 라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는 영상은 누가 봐도 속칭 '야동'이란 걸 알 수 있다. 해석이 필요한 부분은 바로 4호의 '다' 항목이다.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접촉ㆍ노출하는 행위로서 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
노출까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지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영상이란 건 도대체 무엇인가?
A의 주장은 "성관계를 하고 있는 영상도 아니고, 단순히 기숙사에서 옷을 갈아입는 영상인데 일반인의 관점에서 이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만한 행위인가? 우리는 보통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보면서 성적수치심을 느끼지는 않잖아요?"라는 것이다. 일반인의 관점이라면 "어쨌든 훔쳐봤단 거잖아!"라 단정 지을 수 있겠지만, 법의 언어로는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주장이다. 유죄가 되면 벌금형도 없이 바로 징역형이니까. 판례의 입장을 살펴보자.
위와 같은 입법 목적 등에 비추어 살펴보면, 아동·청소년 등이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신체를 노출한 것일 뿐 적극적인 성적 행위를 한 것이 아니더라도 이를 몰래 촬영하는 방식 등으로 성적 대상화하였다면 이와 같은 행위를 표현한 영상 등은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 해당한다.
명확한 성행위가 아니더라도 우선 ①몰래 촬영하였고 ②이를 보며 "야, 섹시하다." 정도로만 느낄 수 있었다면 이는 음란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아마 이런 범죄를 많이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판시하는 게 맞다고 생각할 것이나, 사실은 굉장히 넓게 해석한 경우에 속한다. 2016도21389 판례에 따르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것’은 피해자에게 단순한 부끄러움이나 불쾌감을 넘어 인격적 존재로서의 수치심이나 모욕감을 느끼게 하거나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했으며, 2008도254 판례에 따르면 전라 또는 반라의 여성이 혼자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음란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다 벗고 일부러 포즈를 취해도 음란하지 않다고 하는데 A는 단순히 옷을 갈아입는 영상만을 소지했을 뿐인데? 억울하다고 느낄 것이다.
아청법은 왜 소지만 해도 처벌하는가?
법에서 명확하게 '아동,청소년성착취물'이라고 하니 아동, 청소년이 아닌 성인이 나오는 성착취물을 소지하고 있다면 이는 죄가 아닌가? 그렇지 않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에 의해 착취물을 소지하고 있어도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다만, 이 경우 서로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착취물을 소지한 경우만 처벌한다.(법에서는 의사에 반한다고 표현한다.)
즉, 상대가 아동, 청소년이라면 우리 사회는 이들을 더욱 넓은 범위에서 보호해야 하며, 그렇기에 착취물 소지에 대한 처벌규정이 있음에도 아동, 청소년이 대상이라면 처벌을 더욱 강화하고, 추가로 청소년의 의사와 관계없이 소지자체만으로 처벌을 하고자 함이 아청법 제11조의 존재이유이다. 이를 판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구 청소년성보호법의 입법 목적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적 행위를 한 자를 엄중하게 처벌함으로써 성적 학대나 착취로부터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고 아동·청소년이 책임 있고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려는 데 있다.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은 그 직접 피해자인 아동·청소년에게는 치유하기 어려운 정신적 상처를 안겨줄 뿐만 아니라, 이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비정상적 가치관을 조장한다.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 대한 지속적 접촉이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잠재적인 성범죄로부터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아동·청소년을 성적 대상화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규율하여 위반행위를 처벌할 필요가 있다
결국 같은 착취물이어도 그 대상이 청소년이라면 다른 어떤 경우보다도 보호해야 할 대상이며, 그 위반행위에 대해선 엄벌해야 한다는 게 판례의 취지이다. 그 영상이 고등학교 기숙사를 촬영했다는 것, 그리고 몰래 촬영됐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를 소지하였다면, 이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적 욕구 충족 목적임을 충분히 판단할 수 있으니 이를 엄격히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법원은 A의 주장을 기각하고 원심의 판단을 유지하기로 결정하였다.
'판례로 보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빌려간 물건이 고장났으면 고쳐놔야지?! 그게 건물이라도 말이야. (0) | 2024.01.20 |
---|---|
사람을 때려도 무죄? 범죄라는 것은 생각보다 저지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정당행위 (2) | 2024.01.20 |
실질이냐 형식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포괄주의와 실질과세 (0) | 2024.01.18 |
반려견이 갑자기 손님을 물었는데 내가 한 거라고? 인과관계와 객관적 귀속 (0) | 2024.01.17 |
죽은 뒤에는 말이 없지만 자식들의 입장은 그렇지 않다. 유증과 사인증여 (0) | 2024.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