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3도5915 판례(23. 11. 16.) - 공직선거법 제60조의3 제1항 제5호(예비후보자 등의 선거운동)
예비후보자 A는 표지물을 착용하고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표지물을 들고 선거운동을 하였지만 이는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한다. 하지만 A는 자신이 직접 들고 선거운동을 한 것이라면 이것도 '착용'이라고 주장한다. |
공직선거법이란 선거를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규정한 법률이다. 누가 투표를 하며, 누가 후보로 나갈 수 있으며(이를 피선거권이라고 한다.), 그 피선거권자는 어떻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지를 정하는 법률로 조문은 무려 279개나 된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 공직선거법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우리는 이를 왜 법률로까지 정하여 그 방식을 정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사실 이 판례 자체는 논점이 그리 어렵지 않다.
선거는 왜 해야 하는가?
여러 포스팅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현대 우리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규명하는 학설 중 가장 많은 인정을 받고 있는 학설이 바로 '사회계약론'이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사회는 실체가 없으며, 구성원들의 계약으로 구성된 인공적인 허상에 불과하다.'이다. 여기서 말하는 계약은 국방, 치안 등 국가로써 당연히 해주어야 한다고 인식하는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
아니 애초에 다시 원초적인 질문을 해본다. 왜 국가는 국방, 치안 등 나의 안전을 당연히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인식하는가? 세금을 내기 때문에? 단순히 그런 논리는 아닐 것이다. 정말 세금만이 유일한 이유라면, 반대로 국가는 국민을 선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안게 된다. '너에게는 세금을 걷지 않을 테니, 우리 국가의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없다.'라며 말이다. 서비스에는 거주권도 당연히 포함되니 추방해야 한다. 그 거주권을 지켜주는 것이 국방, 치안이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고자 하는 학설이 바로 사회계약론이다. 애초에 국가가 먼저이고 시민이라는 사회를 만들어 이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모여 살다 보니 같이 살기 위한 질서가 필요했고,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 간에 약속(계약)을 하고 살아가는 것이 국가라는 것이다. 이게 뭐 5명이나 살면 그냥 서로가 맺은 약속을 잘 지켜가며 살면 되지만, 한 5천만 명이 살게 되면, 그게 쉽지가 않다. 모든 사람이 만족할만한 정책을 만들기 어렵듯이 모든 상황에 맞는 약속을 만들기 역시 쉽지 않은 법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생길때마다 국민회의를 열어 5천만 명의 의견을 모으기도 쉽지가 않다. 그래서 사회는 이를 다시 계약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바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줄 절대자 한 명을 선출하는 것으로 말이다.
계약이라 함은 주고 받음이 있다. 시민들은 절대자에게 우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우리끼리 약속한 것을 절대자에게 잘 운영할 수 있게 부탁한다. 다만, 절대자가 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기에 시민들의 재산을 강제로 징수할 수 있는 권한도 함께 준다. 결국 절대자는 시민들에게 돈을 가져가며, 그 돈을 통해 SOC, 국방, 치안 등 여러가지 방면으로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여러 혜택을 제공하도록 역할을 부여하기로 시민들끼리 약속하였다. 막강한 권한을 주는 만큼 이 대표자를 뽑는 데에도 많은 고민을 하였다. 한 명에게만 주면 독재의 우려가 있으니 여러명을 뽑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효율을 위해 한 명의 대표자를 뽑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여기서부턴 시민들의 선택이며, 전자를 선택한 곳은 의원내각제를, 후자를 선택한 곳은 대통령제를 운영하고 있다.
그럼 그 대표는 어떤 방식으로 뽑아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도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모두가 선망하는 그런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5천만 명의 모두의 마음에 드는 1인을 뽑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마음 맞는 사람끼리의 소모임을 구성해서 소모임의 대표를 뽑고 그 대표들의 만장일치로 뽑자고 주장할 수도 있으며, 반대로 그냥 5천만 명의 모두의 의견을 듣되, 더 많은 동의를 구한 쪽을 선택하자(일반적으로 다수결이라 부른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이야 어찌됐든 시민들 간에 묵시적으로 정한 계약을 이행할 권한이 조금 있는 심부름꾼이 필요했고, 이를 선거라는 것을 통해 선발한다는 것이 '사회계약론'의 골자이다. 계약만 빼고 보면 사실 그냥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민주주의라는 것을 과거,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천부인권 같은 비과학적 사상에 두지 않고, 현대에 와서 이를 계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회과학적인 해석을 하려했을 뿐이지, 사실 같은 내용이다.
선거란 공정할 필요가 있다.
사회계약론을 통해 선거가 필요하다는 것까지는 위의 이유로 당연하다더라도, 이를 공정하게 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다. 사회계약론이든 민주주의든 천부인권이든 사실 계급제를 없애기 위한 여러 명분을 찾는 것이었으니, 선거 역시 공평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선거 자체가 불공정하다면, 즉, 자본을 쥐고 있는 사람이 우선되거나 높은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행정구조가 다시 꾸며진다면, 이는 계급제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선거운동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전국으로 돌아다니면서,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구해야 하고, 전단지도 돌리고 하려면 정말 억단위의 돈이 사용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수백억의 자산가라면, 다른 사람들은 며칠 동안만 할 수 있는 선거운동을 1년에 걸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알게모르게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투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면, 이 선거운동 기간만으로도 큰 차이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내가 돈이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반대로 방송계 사람들을 많이 알아서 남들은 하지 못하는 TV 광고 등을 본인만 하게 되면, 사람들에게 더 쉽게 알려지게 될 것이다. 이 역시 공정하지 못한 선거를 만드는 방법이 된다. 공정한 선거가 갖는 의미는 가진 자에 의한 선거가 되지 않고 계급제를 타파하는 수단으로써의 노력의 산물이다.
공직선거법과 위 사례의 판례는 이러한 불공정을 해소코자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착용'의 의미를 대법원까지 항소하면서 이에 대한 해석을 두고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결국 선거의 공정을 기하기 위함이고 나아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가장 작은 발걸음이 된다. 누가 봐도 불공정한 선거운동(부정선거, 위탁선거, 금품수수 등) 뿐만 아니라 이런 사소한 것마저 규정하면서까지 선거운동의 방법을 구체화 해 놓음으로써 말이다.
착용의 의미
공직선거법
제60조의3(예비후보자 등의 선거운동)
①예비후보자는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5. 선거운동을 위하여 어깨띠 또는 예비후보자임을 나타내는 표지물을 착용하거나 소지하여 내보이는 행위
공직선거법에서는 예비후보자(정식 후보자 등록 전까지)의 선거운동 방식을 법률로 정해놓고 있다. 그 중 선거운동을 위해 자신의 표지물을 착용하는 방식으로 선거권자들에게 내보이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선거일 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법에 의해 선거일도 정하고 선거기간도 정하고 있다. 이때 후보자등록을 마친 정식 후보자들은 위 선거기간에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다만, 예비후보자 등록을 마친 자는 그 전부터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공직선거법
제33조(선거기간) ①선거별 선거기간은 다음 각호와 같다.
1. 대통령선거는 23일
2.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자치단체의 의회의원 및 장의 선거는 14일
③ “선거기간”이란 다음 각 호의 기간을 말한다.
1. 대통령선거: 후보자등록마감일의 다음 날부터 선거일까지
2.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자치단체의 의회의원 및 장의 선거: 후보자등록마감일 후 6일부터 선거일까지
제59조(선거운동기간) 선거운동은 선거기간개시일부터 선거일 전일까지에 한하여 할 수 있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제60조의3(예비후보자 등의 선거운동)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따라 예비후보자 등이 선거운동을 하는 경우
예비후보자 등록기간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사실상 예비후보자가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기간도 정해져 있다. 다만 예비후보자의 선거운동을 선거운동기간의 예외로 둔 만큼 그 선거운동의 방식도 특별히 정하여 제한하고 있는데 이것이 공직선거법 제60조의3이며, 이때 제5호의 착용의 의미가 문제가 된 사례이다. A의 경우 어깨띠를 두르지 않고 자신의 표지물을 들고 흔드는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하였는데 이는 착용이 아니므로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판례이다.
공직선거법 제60조의3 제1항 제5호(이하 ‘이 사건 조항’이라 한다)에 의하여 예비후보자에게 허용되는 선거운동방법 중 하나인 ‘표지물을 착용하는 행위’는 ‘표지물을 입거나, 쓰거나, 신는 등 신체에 부착하거나 고정하여 사용하는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단순히 표지물을 신체의 주변에 놓아두거나, 신체에 부착·고정하지 아니한 채 신체접촉만을 유지하는 행위나 표지물을 양손에 잡고 머리 위로 들고 있는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판례는 자신들이 '착용' 같은 조그마한 문제에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는 이유와 착용의 의미를 휴대와 구별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은 혼탁한 선거문화를 바로잡고 고비용의 선거구조를 혁신하여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문화를 정착시키고자 선거운동의 기간과 방법 등을 상세하게 규율하고 있다. … 선거운동기간 이전에는 원칙적으로 모든 선거운동이 금지되지만, 같은 조 단서에 열거된 사항에 해당하는 경우 예외적으로 사전선거운동이 허용될 수 있다는 점 … 이렇듯 이 사건 조항에 따라 예비후보자에게 허용되는 ‘선거운동을 위하여 어깨띠 또는 예비후보자임을 나타내는 표지물을 착용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사전선거운동에 관한 예외이므로, 그 허용범위는 가급적 문언에 따라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제68조 제1항의 개정 전에는 ‘어깨띠의 착용, 모양과 색상이 동일한 모자나 티셔츠의 착용’만을 허용하다가 이 개정을 통하여 ‘어깨띠, 윗옷, 표찰, 수기, 마스코트, 그 밖의 소품을 붙이거나 입거나 지니는 행위’도 허용하는 것으로 확대하였다. 이러한 비교 조항의 개정은 어깨띠 외에 표찰 등이 대상물로 추가되면서 ‘착용’에 해당하는 ‘붙이거나 입는 행위’ 외에 휴대에 해당하는 ‘지니는 행위’도 추가적으로 허용하기 위한 취지에서 이루어졌는데, 같은 시점에 개정된 이 사건 조항에서는 예비후보자에게 허용되는 행위로 어깨띠, 표지물을 ‘착용하는 행위’만을 규정하였다. 또한 위 개정 전 공직선거법 제105조 제2항
은 ‘누구든지 모양과 색상이 동일한 모자나 옷을 착용하거나 그 밖의 표지물을 휴대하여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였다가 위 개정을 통하여 삭제되었는데 이처럼 ‘표지물’의 ‘휴대’라는 개념이 이미 공직선거법상 존재한 바가 있는데 이 사건 조항에서는 ‘표지물’의 ‘착용’이라는 표현이 선택되었다. 이는 결국 예비후보자가 어깨띠, 표지물을 통상적인 의미로 착용하는 방법을 넘어서서 이를 ‘지니는’ 방법 또는 ‘휴대하는’ 방법으로 사전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금지하겠다는 입법자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입법자의 의도는 비교적 장기간에 걸친 예비후보자의 사전선거운동기간에 어깨띠, 표지물을 활용한 다양한 방법의 선거운동이 허용될 경우 선거가 조기에 과열되고 과도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위험성을 고려한 것으로 이해된다.
결국 선거운동의 방법에 관해서는 엄격한 해석을 해야 하고, 이를 준수해야 하는 피선거권자들도 자의적으로 관대하게 해석하여 선거운동을 하지 말고 보수적으로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 판례의 말미에 나와있듯이 이러한 원칙을 통해 선거가 과열되는 것을 막고 과도한 사회적 비용을 들여야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불공정한 선거를 막아, 나아가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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