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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로 보는 이야기

타인이 내 것인 줄 알고 주워준 지갑을 가져왔다. 이것은 절도인가? 사기인가?

by KatioO 2024.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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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22도12494 판례(22. 12. 29.) - 형법 제329조(절도), 제347조(사기)

A는 드라이버를 사러 철물점에 왔다. 드라이버를 구매하고 나가려는 순간 누군가 자신을 부르며 "여기 지갑 떨어뜨리셨어요."란다. A는 자신의 지갑이 아니지만 자신의 것인양 "감사합니다."라며 지갑을 가지고 갔다. 이건 절도인가? 사기인가?

 

행위는 하나이다. 타인이 자신의 것으로 착각한 물건을 돌려주려고 하자, 이것을 기회로 보고 타인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고 속여 가지고 왔다. 생각에 따라서는 절도가 되기도, 사기가 되기도 할 것 같다. 그런데 검사도 이것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는지 주위적 공소사실로는 절도죄를, 예비적 공소사실로는 사기로 중간에 공소장을 변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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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는 누구인가? 지갑의 주인인가? 지갑을 건네준 사람인가? 

내용은 심플하다. 우선 절도죄와 사기죄의 조문을 살펴보자.

형법
제329조(절도)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347조(사기) ①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지갑을 떨어뜨렸다며 나를 부른 아무것도 모르는 제3자를 B, 지갑의 본래 주인을 C라고 하자. 위 포스팅에서 피해자는 형사사건에서 참고인일 뿐, 중요하지 않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형사사건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그런 것이지 위 사안의 범죄를 구별하는 데 있어서는 피해자, 즉, 범죄의 객체가 누구인지가 중요할 수 있다. 다분히 상식선에서만 생각할 때 피해자는 B인가, C인가? 대부분은 C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지갑은 C의 것이고 A가 가져간 것이 그 지갑이기 때문이다. 

 

그럼 A는 C를 상대로 절도를 한 것인가? 이것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C의 지갑이니 A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타인의 재물'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자명한 이야기이다. 그럼 A는 '절취'를 한 것인가? 우선 판례에서는 절취행위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형법상 절취란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자기 이외의 자의 소유물을 점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그 점유를 배제하고 자기 또는 제3자의 점유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2006도2963)

 

절취란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즉, C가 가지고 있는 A이외의 자인 C의 지갑을 C의 의사에 반하여 A가 가져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 옮기는 방식에 대해서는 차후 논하기로 하더라도, 우선 여기서 말하는 절취란 기본적으로 타인이 점유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C의 지갑은 이미 바닥에 떨어져 있던 상황이었다. 그럼 이건 C가 점유하고 있던 것이 아니다. 그럼 절취행위가 아니지 않은가? 맞다. 우리나라 형법은 위와 같은 행동을 절취행위로 보지 않아 절도죄로 처벌하지 않는다. A는 그럼 사기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무죄인가? 우리나라 형법은 위와 같은 행동을 절도로 처벌하지만 않을 뿐이다. 위와 같은 상황은 '점유이탈물횡령죄'를 구성한다.

형법
제360조(점유이탈물횡령) ①유실물, 표류물 또는 타인의 점유를 이탈한 재물을 횡령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처한다.

 

즉, 타인의 물건을 주워서 신고하지 않고 자기가 쓰면 그것은 절도가 아니라 횡령이다. 그럼 사기는 둘째치더라도 어째서 검사는 예비적공소사실로 점유이탈물횡령죄가 아닌 절도를 적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B에 대한 사기의 논점을 살펴보자.

 

 

그렇다면 이것은 절도인가? 사기인가?

A의 행위가 C의 지갑을 가져온 것이기는 하나, B를 속인 사실도 있다. 형법에서 사기죄가 되려면, 보통 상대방을 속여 상대방의 재물을 건네 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사기를 당한 상대방과 상대방이 처분한 재물의 주인이 서로 다르다면, 그 상대방이 주인이 따로 있던 그 재물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사기죄가 성립되려면 피기망자가 착오에 빠져 어떠한 재산상의 처분행위를 하도록 유발하여 재산적 이득을 얻을 것을 요하고, 피기망자와 재산상의 피해자가 같은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피기망자피해자를 위하여 그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권능을 갖거나 그 지위에 있어야 하지만 … (94도1575)

 

우선 이 지갑은 B가 주운 그 순간부터 B에게는 이 지갑의 처분권이 생겼다. B는 이 권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이를 가져갈 수도 있고, 주인을 돌려주기 위해 경찰에 신고를 할 수도 있으며, 가게 주인에게 맡길 수도 있다. 다만, 본인이 가져가면 횡령죄가 될 뿐이다. 그런 B가 먼저 A를 주인으로 착각하여 말을 걸긴 했지만, A는 결국 B를 속이고 이를 건네 받았다. 피기망자인 B와 재산상의 피해자인 C가 서로 다르지만 B에게는 이 지갑의 처분권이 생겼다고 했으니 사기죄도 물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B는 자유로운 처분권이 생겼다고 판단했으니, 사실상 주워서 지갑을 가지고 있던 그 순간만큼은 B의 물건으로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런 B에게서 A가 지갑을 가지고 옴으로써 B가 가지고 있던 처분권을 A가 넘겨 받은 것이라 한다면, 즉, 피해자가 C가 아닌 B의 입장이라면 A는 B에게서 이를 절취하였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절도죄에서는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물건을 대상으로 한다. 꼭 자신의 물건일 필요는 없다. 피해자를 C가 아닌 B로 본다면 충분히 절도죄로도 죄를 물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판단을 살펴보자.

공소외 2(B)는 반지갑을 습득하여 이를 진정한 소유자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지위에 있었으므로 피해자를 위하여 이를 처분할 수 있는 권능을 갖거나 그 지위에 있었다. 나아가 공소외 2는 이러한 처분 권능과 지위에 기초하여 위 반지갑의 소유자라고 주장(기망)하는 피고인에게 반지갑을 교부하였고 이를 통해 피고인이 반지갑을 취득하여 자유로운 처분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따라서 공소외 2의 행위는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하고 피고인의 행위를 절취행위로 평가할 수는 없다. 원심이 판시와 같은 이유로 이 사건 주위적 공소사실을 이유에서 무죄로 판단하면서 원심에서 추가된 예비적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원심의 판단에 사기죄와 절도죄의 구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

 

즉, B는 자신의 것이 아닌 물건을 처분할 수 있는 지위에서 A에게 속아 이를 처분한 것이지, A가 이를 B에게서 절취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사기죄가 성립하고 절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다시 한번 위의 절취에 관한 정의를 내린 판례를 살펴보자.

형법상 절취란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자기 이외의 자의 소유물을 점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그 점유를 배제하고 자기 또는 제3자의 점유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2006도2963)

 

전에는 타인의 점유를 초점에 맞췄다면 이번엔 후자의 경우를 살펴보자. 절도는 기본적으로 점유자의 의사에 반하여야 한다. 하지만 B는 A에게 속아 자신의 의사로 지갑을 건넸지, A가 몰래 B의 의사에 반하여 지갑을 가져온 것이 아니다. 절도와 사기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기망행위가 있었나, 없었나는 사기죄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구성요건(기망행위)이며, 점유자는 줄 생각이 없었는데 가져온 것은 절도죄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구성요건(절취행위)이다. 점유자가 줄 생각이 있어서 주는 것은(점유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았다면) 승낙이 있었다고 보아 죄를 묻지 않는다. 

형법
제24조(피해자의 승낙) 처분할 수 있는 자의 승낙에 의하여 그 법익을 훼손한 행위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벌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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