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3다253790 판례(23. 11. 16.) - 부가가치세법 제39조(공제하지 아니하는 매입세액)
법인 A는 건설사 B에게 건물을 지어달라는 계약을 맺었다. 7. 23. B는 약속대로 건물을 지어 사용승인을 받아 A에게 잔금을 모두 납부할 것을 요구하였고, A는 다음해 3. 30. 잔금을 모두 치르면서 B에게 세금계산서를 받았다. A는 이를 통해 부가세 매입세액 공제를 신청하였지만 실제 사용일은 7. 23.이니 작년에 신고를 했어야 한다며 매입세액을 공제할 수 없으니 세금을 더 내라는 세무서의 연락을 받았다. A는 B가 세금계산서를 늦게 떼주는 바람에 공제를 받지 못했으니 손해라고 주장하며 B에게 배상해달라 요구하고 있다. |
여러가지 세금 중에서 지금 당장 생각나는 하나의 세금을 이야기하라면 아마 양도소득세, 부가가치세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마저도 요즘 들어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그렇지 원래는 부가가치세가 가장 우리의 생활에 밀접한 세금 중 하나였다. 부가가치세는 다른 세금들과는 달리 소득수준 관계 없이 만인에게 10%씩 떼가며, 거의 우리가 실생활에 구매하는 모든 상품에 붙어있는 세금이다. 이번엔 부가가치세 환급과 관련된 사례를 가지고 왔지만, 사례보다는 우리나라의 부가세 구조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고자 한다.
부가된 가치에 붙히는 세금이지만 우리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부가가치세란 '부가(추가)된 가치에 매기는 세금'이라는 뜻이다. 500원의 감자를 가지고 2,000원의 감자칩(부가세 별도)을 만들어 팔았다면, 그 부가된 가치인 1,500원에 세율을 곱해 부과하는 세금이다. 우리나라 부가세 세율은 10%이므로 감자칩 제조회사는 감자칩 한 개당 150원의 세금을 납부하여야 한다. 그리고 보통 이 세금은 소비자에게 징수한다. 그러므로 감자칩의 최종 소비자가격은 2,150원으로 시장에 나오게 된다. 여기까지에 이상한 점이 보이는가?
보통 부가세를 받겠다고 하면 전체 총 가격에 10%가 붙어 나오지 위와 같이 부가가치를 계산해서 그 가치의 10%가 붙지 않는다. 쉽게 예를 들어보면 부가세 별도인 초밥 1세트를 13,000원에 먹었다고 하면 13,000원의 10%인 1,300원의 부가세가 붙는다. 위의 사례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2,000원의 감자칩(부가세 별도)라면 소비자가격은 2,200원이어야 한다. 하지만 부가가치라는 본래의 논리대로라면 2,150원에 가격이 책정되어야 맞다. 왜 50원을 더 냈을까? 이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바로 부가가치세의 핵심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이러한 차이를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부가가치를 계산하며 세금을 매긴 것이 아니라 마지막 생산가격에 10%가 더해져 왔기 때문이다.
그럼 소비세라 불러야지? 왜 부가가치세라 부르는가?
이름은 부가가치세이면서 정작 우리에게는 마지막 최종가격에 10%를 붙혀서 받아간다. 그럼 이건 이름만 부가가치세이지 사실상 소비한 금액에 세금을 붙히는 소비세 아닌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실제 감자칩을 만든 사업자가 어떤 방식으로 부가가치세를 납부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다시 한번 사례를 살펴보자. 감자칩 제조회사는 감자 500원을 사서 감자칩 2,000원을 만든다. 소비자에게는 2,000원에 팔고 200원의 세금을 사업자가 징수한다. 하지만 감자 역시 농부가 감자 종자 50원짜리를 키워 감자를 캔 뒤 500원에 위 제조회사에게 팔았을 것이다. 농부 역시 농산물을 판매한 사업자이므로 감자칩 제조회사로부터 500원의 10%인 50원의 부가세를 징수하였을 것이다. 즉 감자칩 제조회사는 소비자에게 200원의 세금을 징수하였고, 농부에게 50원의 세금을 납부하였다. 즉, 사업자는 총 150원의 세금을 징수한 것과 같다. 사업자가 창출해 낸 부가가치는 1,500원이다. 그리고 이러저러해서 징수한 세금은 사실상 150원이다. 그럼 제조회사 입장에서는 정확하게 부가가치에 대한 10%의 세금을 징수한 것과 다름이 없으니 이대로 신고하여 납부하면 된다. 이게 우리나라 부가가치세의 기초적인 계산 방식이다.
이쯤되면 우리는 합리적인 의심을 품게 된다. 애초에 부가가치가 1,500원이니 소비자에게 150원만 받아 납부하면 소비자는 50원 아껴서 좋고 사업자는 계산도 간단해지니 좋은 거 아닌가? 왜 소비자에게 200원을 받고 농부에게 50원을 내는 복잡한 방식을 취하는가?
부가가치를 계산하고 있다가는 세금 걷기도 전에 국고가 바닥난다.
당장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감자칩은 결국 통일된 규격, 통일된 중량으로 생산되니 가격이 크게 변할 일이 없어야 맞다. 하지만 원재료인 감자는 그렇지 않다. 그 해의 수확량에 따라 가격이 매일 같이 변한다. 오늘 500원하던 감자는 내일이라도 당장 1,000원이 돼도 이상하지 않다. 만약 이와 같이 변했을 때 부가가치만큼만 세금을 부과한다고 해보자. 감자칩의 가격은 2,000원으로 동일하니 오늘은 1,500원의 부가가치를, 내일은 1,000원의 부가가치를 낸 꼴이다. 소비자에게 징수하는 가격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업자는 머리가 아프다. 매일같이 감자 원가를 계산하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똑같은 상품을 2,000원에 팔았지만 매일 징수한 부가가치가 다르다. 감자칩을 한 개만 팔았다면야 재고관리라도 하면서 계산한다지만, 전국에 500만개만 팔아도 500만개가 창출한 부가가치가 각각 다 다르다. 성실한 납세자가 되기 위해 매일같이 이 세금 계산을 위한 인건비를 내느니 그냥 탈세를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걸려서 내는 벌금이 인건비보단 덜 나올 것이다.
그럼 사업자가 감자칩의 부가가치를 아예 1,500원으로 고정시켰다고 해보자. 사업자는 이제 편해졌다. 150×판매한 개수만큼 부가세를 납부하면 되니까. 하지만 이젠 소비자가 머리가 아프다. 오늘은 감자가 500원이었으니 부가가치 1,500원을 더해 감자칩을 2,000원에 판매하였다. 하지만 내일은 감자가 1,000원이다. 부가가치를 고정했기 때문에 내일의 감자칩은 2,500원이다. 사업자가 편해지고 나니 이제 감자칩이 무슨 광어 마냥 시가로 팔리고 있다. 상품의 가격이 매일같이 날뛰니 시장경제가 불안정해진다.
즉, 어떤 방식을 취하더라도 부가가치를 계산하여 납부하는 방식은 너무 많은 부작용을 안고 있다. 이를 해결하고자 우리나라는 사업자에게 자신이 매출한 총 금액의 10%를 매출세액으로 납부하게 하고 그 사업을 위해 매입한 총 금액의 10%를 매입세액으로 공제하도록 하고 있다. 즉, 매출액에서 원가를 뺀 부가가치의 10%가 아닌 매출액×10%에서 매입액×10%를 차감한다. 이를 식으로 나타내보자.
부가가치 × 10% = (매출액 - 원가) × 10% = 매출액 × 10% - 원가(매입액) × 10% = 매출세액 - 매입세액
수학적으로는 같은 내용이지만 부가가치에 세율을 붙히는 것과 매출세액에서 매입세액을 차감하는 것은 그 효과에서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부가가치는 너무 주관적이다. 타짜 잡는 아귀도 이건 못 잡아 낼 것이다.
농부와 사업자의 입장에서 이를 살펴보도록 하자. 농부는 사업자에게 감자를 500원에 팔았다. 농부에게는 매출이지만 사업자에게는 매입이다. 그렇다면 농부는 매출세액 50원, 사업자는 매입세액 50원을 신고할 것이다. 하지만 사업자는 세금을 덜 내고 싶어 감자를 1,000원에 사와 부가가치를 1,000원만 창출했다고 신고하였다. 즉 매출세액 200원, 매입세액 100원을 신고한 것이다. 만약 부가가치에 세금을 부과하여 신고하게 했다면 사업자가 100원을 신고하든 150원을 신고하든 알 수가 없다. 농부가 사업자에게 얼마에 감자를 넘겼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롯이 납세자가 성실하다고 믿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매출세액, 매입세액을 모두 신고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업자는 분명 매입세액을 100원 신고하였는데, 농부는 매출세액으로 50원만 신고하였다. 이젠 둘 중 하나이다. 농부가 매출액을 조작했거나 사업자가 매입액을 조작했거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부가가치세법은 매입세액을 공제받는 시기와 방법을 명확히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신의 공제액을 확실히 하면서 상대방의 매출 신고에 대한 이중 감시 역할을 맡긴 것이다.
이번 사례는 법인 A가 건설사 B가 매출을 늦게 잡았다는 이유로 매입세액 공제를 늦게 신청하자 이를 세무서가 잘못 신고했다라며 매입세액 공제를 해주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매입세액으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그만큼 세금을 내야 한다. A는 이것이 B의 착오로 인해 발생한 손해라 주장하며 B에게 이에 대한 배상을 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감자칩으로 사례로 보나 평소에 우리가 내는 부가가치세로 보나 대체로 얼마 안하니 뭐 이런 걸로 소송을 거나 싶지만, A가 이 사례로 징수된 부가가치세는 무려 4억 6천만원이다.
누군가의 잘못으로 세금을 4억이나 더 냈으면 손해라 해줘야 하는 거 아냐?
우선 사실관계를 파악하자
수급인인 甲 주식회사가 도급인인 乙 주식회사에 도급계약에 따른 용역의 공급시기인 사용승인일(2020. 7. 23.)이 아니라 공사대금 잔금 등이 모두 지급된 날(2021. 3. 30.)에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였고, 乙 회사는 위 세금계산서를 2021년 제1기 부가가치세 매입세액에 반영하여 과세관청에 부가가치세 환급신고를 하였는데, 과세관청이 위 세금계산서는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라는 이유로 乙 회사의 환급신고세액에서 위 세금계산서의 부가가치세 신고액과 그에 대한 10%의 가산세를 합한 금액을 감액하는 경정처분을 하자, 乙 회사가 甲 회사를 상대로 세금계산서를 사실과 다르게 발급한 행위 때문에 감액처분액 상당의 환급금을 감액당하는 손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
부가가치세 신고기한이나 이런 것도 이번 사안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이지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아니다. 결국 이 사안에 대해서, 20. 7. 23.에 건물의 사용승인이 났다면 사실상 그때부터 해당 건물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 사실상 그때부터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고, 그렇다면 적어도 7. 23.에 부가세 신고를 했어야 했는데, 이를 잔금이 치러진 다음해인 21. 3. 30.에 신고한 것은 잘못됐으니 다 뱉어내고 늦게 신고한 가산세도 내라 한 것이다. 무려 4억 6천만원을 말이다.
단, A의 주장은 그럴 듯하다. B가 잔금을 치른 뒤에야 세금계산서를 발행했기 때문에 7월에는 도저히 신고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즉, 이것이 늦은 거라면 A가 늦은 게 아니라 B가 계산서를 늦게 발행한 탓이고 그것도 위법한 행위었으니 그에 대한 배상을 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민법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에 대해 법원의 판시는 이렇다.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세금계산서상 용역의 공급시기는 이 사건 건물의 사용승인일인 2020. 7. 23.이고, 앞서 본 부가가치세의 과세기간에 비추어 이 사건 세금계산서상 매입세액은 원고의 2020년 제2기 매출세액에서 공제될 수 있을 뿐 2021년 제1기 매출세액에서 공제될 수는 없다. 이 사건 감액처분은 원고가 용역 공급시기와 상이한 과세기간에 관하여 부가가치세 환급신고를 하였기 때문에 해당 신고액과 그에 대한 가산세를 환급액에서 감액한다는 취지에 불과하다.
모든 세금은 세금제도를 잘 모르는 납세자를 충분히 배려하고 있다. 납부만 하겠다고 하면 더 낼 수도 있게 해주고 더 낸 걸 환급도 해준다. 너무 늦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결국 A 역시 원래 20. 7월에 공제 받았어야 했던 세금을 21. 3월에 공제 받으려는 것 자체가 원칙적으로 잘못됐다고 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 즉, 21. 3월의 매입세액으로 공제 받으려 하지 말고 다시 고쳐서 20. 7월의 매입세액으로 공제 받으라는 것이고 그렇게 하면 실제로 고쳐준다. 그러므로 손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제 받을 수 있으니까. (이 기간의 차이가 가져오는 실제 효과와 관련해서는 부가가치세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우선은 손해는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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