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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로 보는 이야기

타인이 쓴 글을 훔쳐다 내가 쓴 것처럼 행동하면? 단순히 복제가 아니라 명예까지 훼손한다고? 명예훼손

by KatioO 2024.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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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20도10180 판례(23. 11. 30.) - 저작권법 제136조 제2항(벌칙, 명예훼손)

A는 기술연구소 박사 B가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들을 가지고 있다가, B가 페이스북을 하지 않자 자신이 작성한 것인냥 자신의 페이스북의 A의 이름으로 자신의 식견까지 덧붙여 게시하였다. B는 A의 이런 행위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글인 줄 알고 제보를 하는 등의 명예를 훼손했다하여 A를 고소하였다.

 

내가 기억하는 한 저작권 침해로 인한 명예훼손을 인정한 첫 판례가 아니었나싶다. 우선 우리는 명예훼손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이 접해 보았을 것이다. 형법 제307조에 사실이든 허위사실이든 이것을 적시함으로써 사람의 명예를 훼손시킨 자는 처벌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법
제307조(명예훼손)  
①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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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훼손은 형법에서도 죄를 다루고 있다.

공연성이라든지, 사실적시라든지 요즘 인터넷 방송이 날로 늘어감에 따라 특히 많이 거론되는 죄명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공연성이라 함은 불특정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위 사례의 경우 B가 페이스북에 게재를 했으니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형법상 명예훼손죄를 물을 수는 있을까?

 

보통의 명예훼손죄라 함은 "○이 누구누구랑 바람이 났대, 어머나!" 라던지 "○가 알고보니 전과가 있는 사람이었어." 라는 형태의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고는 있으나, 어찌 됐든 피해자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해야 한다. 하지만 A는 B의 글을 퍼오기만 했고 자신의 생각을 첨부하여 글을 썼을 뿐이지 B에 대한 어떤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시키지는 않았다. 그 방법에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상관이 없다지만, A는 B에 대한 무슨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닌데 형법상 명예훼손죄를 묻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A의 잘못으로 B는 피해를 입긴 입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A의 행위를 다르게 해석하여 "A가 박사인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구독자들을 기망하여 광고비 등의 수익을 얻었다면 결국 사기 아닌가요?"라고 하더라도 그럴 경우 사기의 피해자들은 구독자이지 B가 아니다. 돈을 지불한 건 구독자이기 때문이다. 

 

B는 이제 A를 형법상 처벌할 방법이 없다. 형법을, 특히 명예훼손죄를 제정한 1953년에는 차마 이런 식으로 명예가 훼손될 수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명예훼손죄는 1995년에 딱 한 번 벌금을 1만5천환에서 500만원으로 고친 이후 개정된 적이 없다. 

 

 

그래서 저작권법에서는 저작권자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처벌한다.

우리나라 법을 누리고 있는 국민들은 법의 허점이 너무나도 잘 보이겠지만, 사실 이렇게까지 치밀하고 확실한 법체계를 갖추고 있는 나라도 드물기도 하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선방하고 있다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당연히 우리 선조들은 저작권 침해로 인한 명예의 훼손을 예견하고 무려 1957년에 이러한 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마련해 놓았다.

저작권법(1957. 1. 28. 제정)
제69조(저작인격권의 침해)  제14조, 제16조의 규정에 위반하여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시킨 자는 6월이하의 징역 또는 10만환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저작권법(2023. 8. 8. 개정)

제136조(벌칙)
②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 
  1. 저작인격권 또는 실연자의 인격권을 침해하여 저작자 또는 실연자의 명예를 훼손한 자

 

지금까지는 위의 '명예'란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판례만이 존재했다.

구 저작권법 제95조에 의하면 저작자는 고의 또는 과실로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에 갈음하거나 손해배상과 함께 명예회복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청구할 수 있는바, 위 법조에서 말하는 명예라 함은 저작자가 그 품성·덕행·명성·신용 등의 인격적 가치에 관하여 사회로부터 받는 객관적 평가, 즉 사회적 명예를 가리키는 것이어서, 저작자가 자기 자신의 인격적 가치에 관하여 갖는 주관적 평가, 즉 명예감정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위 법리에 따라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비록 피고가 이 사건 침해기사를 자신의 웹사이트에 게시하거나 다른 언론기관 등에 제공함에 있어 그 저작자인 원고의 성명을 기재하지 아니하였고, 또한 그 내용을 일부 변경하였다 하여도,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원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2007다354)

 

파란색 부분만 봐도 위 사례와 너무 비슷하다. 다만 위 사례는 자신의 기사를 퍼오면서 자신의 이름을 같이 게재하지 않았다는 행위를 하지 않아서 생기는 침해, 즉 부작위로 인한 침해를 들었고, 이번 행위는 행위를 함으로써 생기는 침해, 즉 작위로 인한 침해를 들었을 뿐이다. 기사를 퍼옴으로써 기사로서의 가치를 훼손한 행위는 아니고 오롯이 본인의 기사임을 알리지 않고 게재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명예를 침해했다는 주관적 명예감정은 저작권법상 명예훼손 행위는 아니라고 본다고 판시했다. 이렇듯 저작권법상의 명예는 사회적 명예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번 판례를 살펴보자.

피고인이 성명표시권을 침해하여 페이스북에 게시한 피해자 저작물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마치 피고인의 저작물처럼 인식될 수 있어, 피해자로서는 피해자 저작물의 진정한 저작자가 맞는지 나아가 기존에 피해자가 피해자 저작물의 창작 등을 통해 얻은 사회적 평판이 과연 정당하게 형성된 것인지 의심의 대상이 될 위험이 있다. 한편 피고인이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하여 페이스북에 게시한 피해자 저작물로 인하여, 그 저작자를 피해자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피고인의 게시글에 나타난 피고인의 주관이나 오류가 원래부터 피해자 저작물에 존재했던 것으로 오해될 수 있고, 이에 따라 저작자인 피해자의 전문성이나 식견 등에 대한 신망이 저하될 위도 없지 않다.

 

결국, A가 글을 그대로 베껴와서 잘못된 자신의 식견을 더해 B인 것처럼 게재를 한 행위는 박사라는 B의 사회적 평판에 의심을 품게 만들고 그것만으로도 전문성의 의심을 가지게 만들기 때문에, 사회적 명예를 훼손시킨 것이라 보고 있다. 

 

그럼 명예를 훼손한 것은 맞기에, 첫번째 단락에서 다루었던 내용도 함께 살펴보면,

본죄는 저작인격권 또는 실연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통해서 저작자 또는 실연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될 위험이 있으면 성립하고, 현실적인 침해의 결과가 발생하거나 구체적·현실적으로 침해될 위험이 발생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B에 관한 사실을 적시함으로써 명예를 훼손시킬 것을 요구하지 않고,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만으로 내 사회적 평판이 나빠질 위험만 있다면, 저작권법상 명예훼손, 법 제136조 제2항을 위반했다고 본다는 것이다. 물론 저작권을 위반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평가가 나빠졌다고 볼 수는 없고, 그간의 사정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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