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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로 보는 이야기

사진도 몰래 찍었고, 휴대전화에 사진도 남아있지만, 증거는 될 수 없다? 압수와 임의제출

by KatioO 2024.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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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례 2020도9431(24. 3. 12.) - 형사소송법 제218조(영장에 의하지 아니한 압수)

A는 9회에 걸쳐 피해자 4명의 신체를 허락없이 촬영하였다. A는 지하철에서 피해여성의 사진을 찍다가 목격자 B에게 들켜 휴대폰을 뺏기고 성폭력처벌법(카메라등이용촬영) 위반으로 현장에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그 과정에서 A는 들키지 않기 위해 휴대폰을 다시 되찾으려 했지만 녹록치 않았고,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뺏겼다고 생각한 A는 조사에 응해 법원까지 오게되었다. 원심은 이에 이 휴대폰은 압수를 통하지 않았으므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무죄를 주장하였고, 검사 C는 이를 인정할 수 없다.

 

A가 촬영을 한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A는 피해자들의 의사에 반하여 신체 일부를 허락없이 촬영한 것은 맞다. 이럴 경우 여러 판례들이 존재하며, 그 증거로 사용된 사진들을 토대로 "이 사진은 정말 성적수치심을 느끼게 할 사진인가?"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이는 너무나도 주관적이라 판사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으며, 비슷한 옷매무새, 비슷한 각도, 비슷한 부위를 촬영했음에도 어떤 건 유죄, 어떤 건 무죄 판결이 나기도 한다. 다만, 위에서 이야기한 모든 것들은 결국 "사진이 증거로 활용되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이번의 경우는 그 사진들 자체가 증거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사례이기에 사진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 사진이라는 것은 찍으면 휴대폰에 그대로 저장이 되고 그 휴대폰 마저 목격자가 바로 회수하여 사진으 지우지도 못했으므로, 사진이 실물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증거가 되지 않는 것인가? 이번에 할 이야기는 바로 이런 증거가 되기 위한 과정 「형사소송법」에 관한 이야기이다. 


증거란?

증거(證據)란 재판에서 사실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자료를 의미한다. 형사재판이라는 것은 검사, 변호사의 토론을 보고 판사가 결론을 내리는 행위인데, 그 결과가 사람을 구속하고 재산을 강제로 뺏는 등 너무 가혹하기 때문에 단순히 말 잘하고,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더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 내서는 안된다. 그렇기에 형사소송법에서는 아무리 사실관계에 대해서 친절히 설명하더라도 "그래 무슨 말인지는 알았으니까 증거 가지고 와." 라고 표현한다.

형사소송법
제307조(증거재판주의) ①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

甲이라는 사람이 乙을 때려 상해를 입혔다는 "사실"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乙은 "甲에게 맞았습니다."라고 말하지만 甲은 "때린 적 없습니다. 만나기는 했지만 때린 적은 없어요!"라고 주장한다. 현장에는 甲, 乙만 있었으니 목격자도 없고, 판사는 더더욱이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乙의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어 와서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맞은 것 같은 "심증"은 있지만, 그것이 甲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 우리는 신의 관점에서 보고 있기 때문에 甲이 乙을 때렸다는 사실은 존재한다고 분명히 가정하고 시작했으므로, 甲이 폭행을 한 "사실"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甲이 폭행했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판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전후사정을 살펴 판사의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가? 그렇지 않다. 형사소송법 제307조에 따라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 즉, 증거가 없는 것은 사실로 인정하여서는 안된다. 법의 대화에서는 甲이 乙을 폭행한 "사실"은 인정되지 않는 것, 즉,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甲은 폭행한 사실이 없으므로 무죄가 된다. 

 

이렇듯 증거라는 것은 누구나 흔히 인식하고 있는 단어이기에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갖고 있는 힘은 유죄를 무죄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도 강력하다. 이번 사건 역시 마찬가지이다. 속칭 '카촬'범죄가 성립이 되려면 촬영 행위가 있어야 하고, 그 결과물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①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증거만으로는 안된다. 법원에 이를 올리려면 증거능력이 있어야 한다.

다시 범죄사실을 살펴보면 "4명의 신체를 허락없이 촬영했다"고 표현하였다. 이 부분을 보면서 어떤 괴리감을 느끼지는 못했는가? 그 뒤에는 분명히 목격자에게 피해여성을 찍는 것을 들키긴 했지만, 9회에 걸친 촬영을 모두 들킨 것도 아니고, 4명의 여성을 상대로 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범죄사실에는 "4명"이라고 특정할 수 있는 것인가? 당연히 이렇게 생각이 들 것이다. '휴대폰에 사진이 남아있으니까!'

 

즉, 현장에서 한 행위가 아닌, 목격자가 현장에서 발견한 사실도 아닌 것까지 죄를 묻고자 하는 상태이다. 바로 "휴대폰에 남아 있는 사진과 영상"을 통해서 말이다. 즉, 4명의 여성을 9회에 걸쳐 찍은 "사실"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위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이를 법원에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를 입증할 "증거"가 존재하여야 한다. 휴대폰에 사진이 남아있다!로 증거가 되는가? 사진이 존재하는 것만 가지고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증거가 증거로써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 즉, "증거능력"이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사진은 있는데, 이거 재판에 올릴 수 있는 물건이야?"라고 묻는 것이다. 아니 사진이면 됐지 도대체 이게 재판으로 올릴 수 있는 물건인지는 뭐가 중요한가?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에서 이를 용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위법수집증거의 배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즉, 수사기관이 "몰라 우선 증거부터 강제로 뺏어와. 범죄인게 드러나면 강제로 뺏는 게 뭐가 중요해!"라며 헌법에서 규정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범죄를 드러내는 결정적인 증거라도, 이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집하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나라 형사법의 모토이다.

 

그렇다면 이제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실도 존재하고 사진도 존재하며, 그로 인해 목격자가 목격한 사실 말고도 4명의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사실도 존재한다. 어떻게? 휴대폰에 있으니까. 그럼 마지막 하나가 남았다. 이 휴대폰은 법원에 올려도 되는가? 즉, 적법하게 수집하여 "증거능력"이 있는가?


임의로 제출하였고, 돌려준다고 했으면, 진짜로 언제든지 돌려받을 수 있어야 한다. 

원심 판결문에 나온 수사의 경위를 살펴보자.

 

가) 행인들은 2018년 지하철 ○역 출구 에스컬레이터에서, A가 피해여성을 몰래촬영하는 것을 목격하고, 피고인을 붙잡아 휴대 전화기를 빼앗은 다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피고인의 신병과 휴대전화를 인계하였다.

 

나) 경찰관은 현장에 있던 사람이 아니므로, 범죄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A에게 휴대전화 사진첩을 간접적으로 열게끔 하였으나, A가 휴대전화를 경찰관으로부터 뺏으려하였고, 이에 경찰관은 A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휴대폰을 압수하였다.

 

다) 경찰관은 체포하여 온 A에게 휴대폰 압수와 관련하여 임의제출 동의서를 받고, 잠금장치를 해제한 뒤 압수조서를 작성하였다.

 

라) 이 사건 담당 부서인 여성청소년과 수사팀으로 A를 인계하였고, 현장에서 바로 피의자신문을 실시, 휴대전화기에 저장된 동영상 파일들을 토대로 나머지 범행에 대해서도 추궁하자, A는 이에 자백하였지만, 휴대폰을 돌려달라는 요구에 수사관들이 응하지 않았으므로 이의제기를 하겠다고 한다. 

 

휴대전화라는 "증거"가 수사부서로 전달되기까지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불법한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보자. 

형사소송법
제212조(현행범인의 체포) 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없이 체포할 수 있다.
제213조(체포된 현행범인의 인도) ①검사 또는 사법경찰관리 아닌 자가 현행범인을 체포한 때에는 즉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리에게 인도하여야 한다.

가)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현행범은 누구나 체포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216조(영장에 의하지 아니한 강제처분) ①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제200조의2ㆍ제200조의3ㆍ제201조 또는 제212조의 규정에 의하여 피의자를 체포 또는 구속하는 경우에 필요한 때에는 영장없이 다음 처분을 할 수 있다.
2. 체포현장에서의 압수, 수색, 검증

나) 또한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경우 영장에 의하지 않고 휴대폰을 압수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49조(검증 등의 조서) ①검증, 압수 또는 수색에 관하여는 조서를 작성하여야 한다.
제218조(영장에 의하지 아니한 압수) 검사, 사법경찰관은 피의자 기타인의 유류한 물건이나 소유자, 소지자 또는 보관자가 임의로 제출한 물건을 영장없이 압수할 수 있다.

다) 압수와 관련해서는 반드시 조서를 작성하여야 한다. 또한 A가 임의로 제출한 물건은 영장없어도 된다. 

 

즉, 수사기관은 그냥 영장에 의하지 않고 압수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를 다시 살펴보면 현장경찰관이 A에게서 압수와 관련하여 "임의제출" 동의서를 받은 사실이 보인다. 즉, 현행범체포에 따른 영장에 의하지 아니한 압수가 아닌, 임의제출의 형태로 압수한 것이다. 아래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자.

수사기관이 별개의 증거를 피압수자 등에게 환부하고 후에 임의제출받아 다시 압수하였다면 증거를 압수한 최초의 절차 위반행위와 최종적인 증거수집 사이의 인과관계가 단절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으나, 환부 후 다시 제출하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우월적 지위에 의하여 임의제출 명목으로 실질적으로 강제적인 압수가 행하여질 수 있으므로, 제출에 임의성이 있다는 점에 관하여는 검사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증명하여야 하고, 임의로 제출된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경우에는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대법원 선고 2013도11233)

압수의 경우, 수사기관이라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겉모습만 "임의성"을 띈 채, 사실상 강제적인 압수가 행하여지게 되면, 이는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으므로, 임의로 제출된 것이라는 것이 명백히 입증된 경우에만 제출된 증거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임의제출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검사가 증명해야한다 판시하고 있다.

 

다시 원심의 수사과정 라)를 살펴보면, A는 휴대폰을 돌려달라 요구하였다. 임의로 제출하였기 때문에 돌려달라는 요구에는 반드시 돌려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수사기관이 형사소송법 제216조에 의한 강제처분을 한 것이 아니라 제218조에 의한 임의제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A역시 "현장 경찰관이 본인이 돌려받길 원하면 언제든지 돌려주겠다고 이야기 했다."는 언급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돌려주지 않고 이 휴대폰의 내용을 기반으로 추가로 범죄를 인지하였다. 이건 임의제출이 됐다고 보는 것이 맞는가? 이번 사례 대법원이 판시를 살펴보자.

임의제출물을 압수한 경우 압수물이 형사소송법 제218조에 따라 실제로 임의제출된 것인지에 관하여 다툼이 있을 때에는 임의제출의 임의성을 의심할 만한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을 피고인이 증명할 것이 아니라 검사가 그 임의성의 의문점을 없애는 증명을 해야 한다

이에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A에게 임의로 제출된 피압수물을 임의로 돌려받을 수는 없다는 고지를 했는지에 대한 증거도 없으며, 당시의 A가 휴대전화를 바로 되찾기 위해 노력을 하기도 했고, 변호사의 조력을 받지도 못한채 피의자로 조사를 받으면서 일부 범행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었기에, 자발적으로 이 휴대전화를 수사기관에 제출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하지만, 원심의 증거능력을 부정한 판결에도 검사가 이를 증명하지 못하였고, 임의제출에 관한 의문점을 없애는 증명은 검사가 하여야 하기 때문에, 임의성이 부정됐으므로, 휴대전화의 증거능력은 인정할 수 없다. 즉, 다른 죄의 부분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적어도 성폭력처벌법(카메라등이용촬영)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으니 사실관계를 따질 수 없으므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손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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